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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행공 프로젝트 하남ㄴ편

01

첫번째:

아이들의 등교길

“신호등이 없어 위험해요.”“큰 차들이 쌩쌩 달려 무서워요.”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덕풍초등학교에 학생 30여 명이 모여 학교를 오고 가는 길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남 덕풍초 앞

덕풍초등학교 학생들이 통학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워크숍 모습

학생들은 4~5명씩 7개조로 나눠 마을지도에 자신의 통학 동선을 그려 넣고 평소 위험을 느꼈거나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역을 표시했다.

하남 덕풍초 앞 하남 덕풍초 앞

덕풍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는 통학로를 지도에 표시하게 했다.

가장 많은 의견이 나온 곳은 학교 정문 앞 2차선 도로인 덕풍공원로다.

학생들이 덕풍공원로와 정문 앞을 위험하다고 꼽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년 전부터 재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덕풍동은 대단지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고, 소규모 주택 단지 공사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학교 정문과 후문 앞을 지나는 이 도로에 차량 통행량도 늘었다.

게다가 학교 정문은 덕풍공원로와 신장로 205번길(일반통행길), 신장로 189번길(주택가 골목)이 만나는 사거리에 있다.

학생들의 대다수가 도보로 등하교를 했다.

등하교 시간만 되면 정문앞은 학생들의 행렬과 학생들을 태우기 위해 정차한 차량, 그리고 통행 차량들로 엉키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복잡한 교차로에는 신호등이 없었다.

학생들은 차들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주택가 골목이 위험하다고 지적한 아이들도 많았다.

“차가 많이 다니지만 인도가 따로 없어요.”
“(골목은 좁은데) 주차된 차들이 많아 차들이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깜짝 놀라요.”

아이들은 “학원 봉고차나, 엄마·아빠 차를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사업 시행전 덕풍공원로 횡단보도에 있었던 보행자 안전 사인 사업 시행전 덕풍공원로 횡단보도에 있었던 보행자 안전 사인

신호등이 없었던 과거 덕풍공원로 횡단보도에 위치한 보행자 안전 사인의 모습

사업 시행전 신장로 189번길에서 차를 피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

신장로 189번길에서 오가는 차를 피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

2019년 9월 학생들은 두 번에 걸친 회의에서 나온 이런 의견들을 하남시청에 전달했고, 학부모와 교직원들도 ‘안전한 통학길’을 만들기 위한 워크숍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하남시청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덕풍초등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통학길을 안전하게 바꾸는 공공디자인 사업을 착수했다.

공공디자인이란 지역 특성과 주민 편의에 맞춰 공공장소와 공공시설물을 설계·재설계하는 공공사업을 말한다. 관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사업과 달리,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주민이 지역의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과정에도 적극 개입한다는 특징이 있다.

하남 덕풍초 지도에서 위치

덕풍초 학생들이 문제 제기를 한 후, 학교와 학부모·지역 주민·시청·경찰 등 주요 관계자들이 모여 협의체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들어갔다.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덕풍초 통학길은 안전하게 바뀌었을까.

02

두번째

“신호등이 생겼으니 이젠 꼼짝도 못하겠죠”

하남 덕풍초 삼거리 사업 이후 모습

지난 4월29일 오전 8시. 아이들이 등교하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은 시각에도 덕풍초등학교 정문과 후문 앞에는 노란 조끼를 입은 학부모와 지역 주민 대여 섯명이 도로에서 통학 지도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냈니? 어서 오렴.”

2학년 아니면 3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이귀복씨(78세)를 보고 인사했다.

등하교 도우미 이귀복씨(78)

보행자 신호등에 녹색불이 들어오자 서행하던 차들이 일제히 멈췄다. 이씨가 노란 깃발을 들어 차량을 가로막은 뒤 아이들을 건너게 했다. 그는 2년 전부터 덕풍초 앞에서 아침마다 통학 지도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앞인데도 횡단보도에 신호등 하나 없었어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서있으면 제가 오가는 차량을 막고 아이들을 건너게 하거든요. 그러면 운전자가 막 따지는 거예요. ‘바쁜데 왜 세우냐’고. 이제 신호등이 있으니까 꼼짝 못 하겠죠.”

등하교 도우미 이귀복씨(78세)

음성 아이콘을 클릭하시면 인터뷰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왕복 2차선 덕풍공원로의 이 신호등은 공공디자인 사업으로 불과 열흘 전 설치된 것이다. 학교 정문 앞 사거리에 2개, 후문 앞에 1개가 생겼다.

주차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사진 중앙의 핸들을 잡고 좌우로 이동하며 좌우 사진을 비교해보세요

신호등이 없었던 초등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설치된 이후 모습

덕풍공원로 중간중간 설치됐던 방지턱도 좀 더 넓고 높아졌다. 차량의 속도를 알려주는 표시등도 생겼다.

하남시청은 덕풍공원로 길가에 그려져 있던 ‘거주자 우선주차구역’ 16칸을 모두 지워 없앴다. 학교 앞 도로에 운전자 시야를 가로막는 요소들을 제거해 교통사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신호등이 없었던 과거 덕풍초등학교 정문앞 횡단보도 신호등이 설치된 이후 덕풍초등학교 정문앞 횡단보도

덕풍공원로에 설치된 차량 속도 계기판과 방지턱

학교 앞 덕풍공원로 인도에는 무단횡단을 막는 담장이 새로 설치됐다. 담장 높이가 어른 명치까지 올 정도로 높았다.

덕풍초 통학길 공공디자인 사업을 총감독하는 김성곤 서울시립대 교수는 “담장이 가로 축으로 돼 있냐, 세로 축으로 돼 있냐는 것도 신경을 썼다. 가로축은 아이들이 밟고 올라가 담장을 넘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세로축 담장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날 1학년 아이를 등교시키던 한 학부모는 “아직 마무리가 덜 되긴 했지만 많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신호등이 설치돼서 다행이고, 담장도 높아져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호등이 있어도 식은땀이 흐르는 일은 여전히 수시로 벌어진다.

아침 9시10분, 이귀복씨가 통학 지도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한 아이가 뛰어와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다. 마주 오던 차량이 급하게 섰다. 이씨가 도로로 뛰어들어 차량을 막고 아이를 지나가게 했다. 아슬아슬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가 되돌아오더니 또다시 뛰어서 길을 건너려고 했다. 이번엔 아이를 붙잡고 ‘빨간불에 건너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 뒤 이씨가 함께 길을 건넜다.

“허허허, 애가 신발주머니를 안 가지고 왔대요.” 이씨는 아이가 집에서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시 학교로 뛰어들어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03

세번째

만들어지지 못한 ‘통학길 안전 장치’

원래는 덕풍초등학교 진입 구간 차로에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지그재그 도로(시케인·Chicane)’를 만들 계획이었다.

유럽에서는 몇몇 도시에서 도로의 일정 구간을 지그재그 형태로 만들어 자동차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이도록 유도한다. 국내에도 서울 덕수궁 돌담길 등에 지그재그 도로가 있다.

시케인 기법이 도입된 덕수궁 돌담길의 모습

시케인 기법이 도입되어 구불구불한 형태를 한 덕수궁 돌담길의 모습

하지만 덕풍초등학교 진입 구간은 이 기법을 적용하기에 도로 폭이 좁다는 지적을 받아 실행하지 못했다.

총감독 김성곤 교수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치 중의 하나가 ‘시케인’인데 적용을 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현재 도로선만 지그재그 표시하게 적용된 모습

덕풍공원로 일부 구간에 시케인 기법을 도입하는 대신 ‘서행구간’ 표시인 지그재그선을 그려넣었다.

학생들이 ‘꼭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던 학원 승합차가 잠시 정차하는 공간(안심정류장)은 사업 계획에 포함됐지만 경찰과의 협의 과정에서 결국 취소됐다.

사업 시행전 덕풍공원로 횡단보도에 있었던 보행자 안전 사인

신장로 205번길에 설치하고자 했던 안심정류장 시안

안심정류장은 정문 옆 일방통행길(신장로 205번길) 한쪽에 조성하려고 했지만 학교가 일방통행길 왼편(서쪽)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이 타고 내리기 편하려면 북쪽으로 향하는 현재 일방통행로를 남쪽으로 변경해야 했던 것이다.

주차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사진 중앙의 핸들을 잡고 좌우로 이동하며 좌우 사진을 비교해보세요

신장로 205번길의 사업 시행 전 모습과 사업이 완료된 모습. 안심정류장은 설치하지 못했지만, 과거 도로변을 채우던 불법주차 차량들은 사라졌다.

경찰은 “신장로 205번길의 일방통행 방향이 불과 수년 전 바뀐 적이 있다”며 “너무 자주 변경하면 운전자들의 혼란을 초래한다”며 방향을 바꾸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아이들이 덕풍공원로 다음으로 많이 통학에 이용하는 길은 주택가 골목인 ‘신장로 189번길’이다. 학생의 18%가 이 길로 통학한다.

신장로 189번길 이면주차 현황

신장로 189번길 이면주차 현황

집 30여채가 모여있는 골목길에는 양쪽으로 차량 20여대가 주차돼 있었다.

주차로 좁아진 길을 자동차들이 수시로 오고 갔다. 골목에 들어오려는 승합차, 나가려는 승용차들이 마주쳐 승합차가 후진했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차량 사이사이를 지나다녔다.

신장로 189번길을 따라 등교중인 모습

김모씨(62)는 이날 초등학교 2학년생인 손주와 함께 신장로 189번 골목길을 걸었다. 아이가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골목길에 주차된 차들이 많은 데다 차들이 많이 다녀서 도저히 혼자 보낼 수가 없어요. 아이도 무서워서 혼자 다니지 않고요. 정문 앞에 신호등이 생긴 건 다행이지만, 그 외에 아이 통학길이 얼마나 안전하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김모씨(62세)

음성 아이콘을 클릭하시면 인터뷰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공공디자인 사업팀은 골목길에 주차된 주민 차량을 인근 공영주차장과 동주민센터 주차장 등으로 이동시킬 계획이었다. 골목길에 인도를 만들고, 차량이 엉키지 않도록 일방통행으로 지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다. 협의체 대표로 나섰던 통장 신척식씨(72)는 “수십 년간 집 앞 도로에 주차를 해왔는데 갑자기 주차를 하지 못하게 하니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다”며 “하남시에서 마련한 공영주차장은 충분하지도 않고, 주민들이 느끼기에 거리도 좀 먼 편이다. 지금도 여러 대안이 논의되고 있고, 서로가 조금씩 양보를 하고 이해를 맞춰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말했다.

신장로 189번길에서 바라본 덕풍초등학교

신장로 189번길에서 바라본 덕풍초등학교

곳곳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덕풍동의 주택들이 낡고 촘촘하게 붙어있다. 주차장을 만들 수 있는 공간도 한정돼있다. 그나마 만들어진 공영주차장들은 초등학교에서 걸어서 5분, 멀게는 15분 거리에 있다.

04

네번째

아이들이 원했던 통학길, 언제쯤 가능할까

어린이보호구역 사인

사업팀은 골목길(신장로 189번길) 인도 조성 계획을 장기 목표로 두고, 지역 주민들에겐 아이들 등하교시간 동안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시간제 일방통행’을 차선책으로 제시했다.

김범수 하남시청 도시디자인팀장은 “학교와 학부모 측에는 시간제 일방통행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골목길 집들은 가가호호 방문해 설득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덕풍초 통학길을 개선하는 공공디자인 사업은 4월 말 모두 종료됐다.

하남 덕풍초 앞 하남 덕풍초 앞

학부모 워크숍과 덕풍동 주민들을 대상으로한 워크숍 현장 사진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설치하거나, 차도와 인도를 분리하는 담장을 세우는 일처럼 구성원간 이해관계가 많이 부딪히지 않는 사업 구간은 착착 진행됐다.

반면, 주민들의 주차공간을 없애고 그 자리에 인도를 만드는 골목길(신장로 189번길) 사업 구간은 주민 협의가 길어지면서 난항을 겪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리두기로 마을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눌 기회가 충분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덕풍공원로를 따라 통학하는 학생들

덕풍공원로를 따라 통학하는 학생들

아이들이 원하는 안전한 통학길은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

총감독 김성곤 교수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이해관계가 있는 부분이라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며 “모든 마을 구성원들이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업 종료 이후에도 구성원들과 협의해가며 반발자국씩 차근차근 진행한다면 아이들이 원했던 안전한 통학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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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하교 도우미 이귀복씨의 인터뷰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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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씨(62세)의 인터뷰 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