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학교
작성일:
2025-04-30
작성자:
박은영
조회수:
678

[기획]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학교의 이유 있는 변신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54호(202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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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학교 


1970~80년대 시작된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는 학령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교육을 국가발전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국민교육헌장(1968)’을 선포하며 대규모 학교 건설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했다. 이 시기 지어진 학교는 당시 주요 건축 트렌드였던 대량생산 및 표준화를 반영해 주로 교실과 복도, 운동장 위주의 단순한 구조를 갖추었다. 급등하는 학생 수의 수용을 최우선 목표 삼아 세워진 학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노후된 건물은 안전성과 환경적 측면에서 한계를 보였고 현대 사회에서 중요해진 창의성, 사회적 연대와 교류 등을 교육 현장에 반영하는데도 미흡했다. 특히 지방 소도시의 소멸, 농촌 학교의 폐교 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학교는 이제 학습의 공간을 넘어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과 정서적 돌봄을 제공하고 모든 세대가 소통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장으로써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뿐 아니라 지역주민들까지 포괄하는 세대 포용의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더이상 일방적으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가치를 반영하는 장으로 역할한다. 더불어 학교가 다양한 목소리와 요구를 수렴해 주민과 함께 구축하는 열린 공간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건축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건축가는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조율하는 중간자이자 이를 구체적 결과물로 실현시키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따라서 건축가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공동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이정표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나주시 노안남초등학교 ‘비바놀이터’, 여수구봉초등학교 ‘구봉트리하우스’, 서울시 중랑구 면동초등학교 ‘꿈을 담은 놀이터’, 서울시 노원구 서라벌고등학교 ‘프로젝트 클래스룸’, 울산시 북구 무룡고등학교 ‘더하우스’ 등 다수의 학교 공간 혁신 사업에 참여한 김도현 건축사사무소 유어예 소장에게 학교가 당면한 현실 문제와 해결 방안, 향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교육 공간에 대해 상세히 물었다.


건축사사무소 유어예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건축사사무소 유어예(遊於藝)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공간과 장소를 배경으로 바라보고 질문하고 사유하는 건축의 놀이터이자 작업장입니다. 건축은 여러 사람이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좋은 결과물이란 좋은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건축의 전반적인 ‘과정’에 집중하고 건축(藝)의 과정을 놀이(遊)로 향유하며 이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다수의 학교 공간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학교’라는 특수한 목적을 지닌 건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018년 개소 후 첫 프로젝트가 서울시교육청에서 주관한 ‘학교공간 재구조화’* 사업이었고 이 계기로 주로 공공의 영역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학교공간 재구조화 사업이 시작되던 당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교가 교도소보다 못하다’는 등 현대 교육 시스템과 학교라는 시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오랜 세월 바뀌지 않았던 학교 공간이 변화하기 시작했죠. 건축 설계라는 창작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미래를 지향하고 만들어야 하는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적극적인 변화와 실험이 가능해진 학교라는 시설은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지금도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학교공간 재구조화 : 2018년부터 교육부와 전국 시·도 교육청이 추진하는 정책이다. 노후된 학교 시설을 단순히 개·보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래 교육에 부합하는 창의적 학습 환경과 지역사회 연계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학교를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생과 교직원, 지역주민이 공간 설계 초기 단계부터 함께 참여하는 ‘사용자 참여 설계’ 방식을 도입해 학교 공간을 공동으로 기획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오래된 교내 독서실을 다채로운 레이아웃으로 재구성한 서울시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더불어 숲 아고라 광장’. 사진 제공: 건축사사무소 유어예


인구 구조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사회 환경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학교도 변화를 꾀하며 새로운 역할에 대한 고민이 논의되는 시점인데요. 건축가로서 현재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학교라는 시설의 존재 방식 자체를 새롭게 고민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교육의 장에서 학교의 사회적 역할은 이제 ‘미래 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농촌의 학교들이 폐교 위기에 처하고, 지방의 소도시가 소멸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학교는 정서적 돌봄을 제공하고 모든 세대가 소통하는 지역의 커뮤니티 센터로 진화해 지역 공동체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또한 교실 중심 교육의 한계에서 벗어나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학습 방식으로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으며,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평생학습 공간으로서 배움과 창작을 계속적으로 실현하고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합니다.


현재 교육청과 학교 관계자가 가장 직면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또 교육계에서 건축가가 맡게 된 임무는 무엇인가요? 

교육과 관련된 정책은 비교적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물리적 환경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 쉽지 않습니다. 예산은 항상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교육 공간은 계속 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 30~40년 이상 노후한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기존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학교의 모습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계획과 물리적 환경, 예산 등 다양한 제약이 존재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건축가는 ‘실행 가능한 계획으로 문제 해결력’을 갖춰야 하고 동시에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해주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요청 받게 됩니다. 


건축사사무소 유어예의 대표작을 학교 공간 개선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주세요.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삼은 것은 무엇이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구현했나요? 

‘새로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에서 우리가 항상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을 애써 외면하고 낯설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나주시 노안남초등학교의 ‘비바놀이터’ 프로젝트가 이러한 관점을 반영한 대표 사례입니다. 오랜 기간 잘 사용되지 않던 학교 운동장 자리에 우리는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어울릴 수 있는 휴식, 놀이, 학습의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일곱 가지 혁신 방향(자전거 하이킹, 발표 및 공연, 야외학습쉼터, 해먹쉼터, 피크닉, 풋살장, 놀이공간)을 설정했습니다. 여섯 가지 테마를 가진 공간을 자전거 길로 분리하고 또 동시에 연결하며 다채로운 풍경을 담는 일을 중점적으로 고민했습니다. 


시설이 낡아 아이들이 찾지 않는 전남 나주시 노안남초등학교의 텅 빈 운동장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비바놀이터 프로젝트. 

운동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여섯 가지 활동 테마를 구상하고 공간 구성에 반영했다. 자료 제공: 건축사사무소 유어예


완공 후 아이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긍정적으로 변화한 부분과 우리가 앞으로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텅 비어있던 운동장은 아이들로 가득 찼고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점심 시간과 놀이 시간에는 스스로 안전 요원을 배치하는 등 아이들이 주도해 새 공간을 살피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교직원들은 주변 학교와 연계 행사를 운영하고, 주말에는 산책과 피크닉을 위해 찾는 주민들을 위해 학교를 개방한다고 합니다. 노안남초등학교는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놀 거야’라는 의미를 지닌 비바놀이터를 통해 학교를 생태 교육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며 다양한 학교 특색 활동과 지역 연계 활동을 강화하고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의 영역에서 소유에 대한 인식 변화와 공공성의 회복을 보여주는 사례로 앞으로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고민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가치입니다.

2024 대한민국공공디자인대상 우수상 비바놀이터 보기 


2024 공공디자인대상 우수상을 수상한 나주시 노안남초등학교 비바놀이터. 단순한 놀이 시설을 넘어 아이들의 창의력, 사회성, 건강 증진을 위한 교육 공간이다. 

사진 제공: 건축사사무소 유어예


특별히 기억에 남는 또 다른 학교 공간 개선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전남 여수시의 여수구봉초등학교에서 진행했던 학교 공간 재구조화 사업인 ‘구봉 트리하우스’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처음 학교에 방문했을 때 대상지 너머로 보이던 여수의 푸른 바다를 보며 감탄이 절로 났습니다. 수차례의 설계 협의를 거치며 선생님들이 보여준 넘치는 열정과 공간 개선의 의지 역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언뜻 보면 학교가 모두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학교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고 분위기 역시 상당히 다릅니다. 선생님들은 건축가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교육 과정의 운영과 더불어 아이들의 쉼과 놀이의 일상을 고민하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 유휴공간을 활용해 설계된 트리하우스는 전망대, 숲속 계단 교실, 징검다리, 그물 해먹 등이 있는 놀이, 학습, 휴식이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위원회가 여러 차례의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하며 모은 아이디어 요소를 반영해 완성했습니다. 

2022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우수상 트리하우스 보기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한 디자인 워크숍을 통해 공동 설계한 여수구봉초등학교 트리하우스. 

운동장 주변 유휴공간을 활용해 조성되었으며 기존에 있던 나무와 지형을 활용한 공간을 조성했다. 사진 제공: 건축사사무소 유어예


학교 공간을 전반적으로 개조하면 좋지만 예산, 공사 기간 등 여러 문제로 기존 시설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교 내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있다면?  

복도나 계단, 현관과 같은 공간은 넓지만 단순히 이동을 위한 통로로만 사용됩니다. 벽면에 책장이나 화이트보드 등을 설치하면 작은 독서 공간이나 프로젝트 공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며 남게 된 교실 뒤편이나 창가 근처의 여유 공간에는 가구나 시설물을 배치해 휴식, 독서 활동 등이 이루어지는 창의적 소통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야외 공간이 부족한 도심지의 학교에서는 필로티나 옥상에 야외학습장이나 텃밭을 마련해 생태교육의 장으로 조성할 수 있습니다. 유휴공간을 개선하는 것도 좋지만 기존 시설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연한 공간 계획이 중요합니다. 과목별로 분류하던 교실을 이론과 실습, 실험 등 교수 학습 방법에 따라 나누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공간으로 조성해야 합니다. 

 

학교의 가장 큰 주체는 학생이지만 교육청과 학교 교직원, 학부모 등 여러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이 복합적으로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조율했나요?

우선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난 다음, 개별 입장에서 공간에 대한 요구와 우선순위를 확인합니다. 이후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공유해 다양한 의견이 실제 다루어지고 계획 안에 반영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기반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디자인 협의 및 보고회 등 소통 과정에서 각 주체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서로 양보하고 조율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갑니다. 피드백은 일방적이지 않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공감하고 의견을 나누는 대화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학교가 교육과 돌봄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체육시설이 융합된 학교복합시설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참고하면 좋을 해외 학교 공간 사례가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학교와 도시가 경계 없이 흐르는 구조’를 갖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의 외레스타드 김나지움 Ørestad Gymnasium입니다. 학교 도서관과 카페, 전시 공간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해 학교를 열린 공공문화공간으로 만든 좋은 사례입니다. 이 학교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개인 영역, 휴게 및 회의 공간, 그룹 토론 공간 등의 다양한 공용 공간이 다층적으로 위치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나선형으로 열린 계단은 구성원들을 서로 연결하며 소통을 촉진합니다. 공용 공간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풍경이 건축적인 산책을 실현하고 열린 교실로 작동합니다. 이외에도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에서도 생활 거점으로서 지역사회와 연계된 학교복합시설 사례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교실을 없애고 4층 규모의 건물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교실로 디자인한 덴마크의 외레스테드 김나지움 학교. 

덴마크 건축가 킴 허포스 닐센Kim Herforth Nielsen이 설계한 곳으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이 학교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 과정을 강조하며 개별부터 큰 규모의 집단까지 다양한 학습이 이루어진다. 사진 출처: oerestadgym.dk


소장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래학교는 어떤 모습인가요?

미래의 학교는 울타리 안에 갇힌 공간이 아니라 ‘마을과 함께하는 열린 플랫폼’이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뒤 마을에서 확장된 경험을 해야합니다. 학교는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배움을 제공하며, 나아가 창작을 실현하고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지역의 커뮤니티로서 정서적 돌봄 또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학교는 이제 더 이상 교육 시설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는 체육시설, 도서관 등 시설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개방하며 학교 복합화를 하고 있지만 이상적인 미래 사회의 학교는 단순히 시설을 개방하는 일을 넘어 ‘교육과 문화, 돌봄, 커뮤니티가 엮인 복합적인 생태계’, ‘마을과 함께하는 열린 플랫폼’으로써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이 : 김도현 건축사사무소 유어예 소장

홍익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한민국 건축사(KIRA) 및 미국 친환경 전문 자격 LEED AP(BD+C, ID+C)를 취득했다.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dmp)와 해안건축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2018년 건축사사무소 유어예를 개소하고 공공의 영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위촉되어 활동 중이다.


글: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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