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작성일:
- 2025-08-05
- 작성자:
- 박은영
- 조회수:
- 1686
[기획] 21세기가 요구하는 도시 공원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57호(202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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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기후 공원 엥하베파르켄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
극단적인 강우와 폭염, 도시 단위 침수와 인프라 마비는 더 이상 일시적 사고가 아니다. 근래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반복되는 기후 재난은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일수록 도로와 건물, 지하 설비 등 도시 시설물이 기후 변화로 인한 큰 피해를 입어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상황에서, 기후 적응형 도시 설계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기후 공원 ‘엥하베파르켄(Enghaveparken)’은 이러한 대응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곳은 평상시에는 광장과 운동장, 정원으로 활용되지만 폭우 시에는 약 2만 2000톤의 빗물을 임시 저장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홍수 조절과 시민 생활 공간이 하나의 구조로 통합된 이 다기능 공간은 도시 공원이 기후 회복력을 높이는 기반 시설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공원을 설계한 코펜하겐의 건축 스튜디오 서드 네이처(Third Nature, 덴마크어: Tredje Natur)의 공동 창립자 플레밍 라픈(Flemming Rafn)은 건축과 조경, 도시 설계를 아우르며 기후 환경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인물이다. 지난 10여 년간 유럽 여러 도시에서 기후 위기 대응형 도시 인프라 설계를 실험해온 그에게 급변하는 기후 시대 도시 공원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 물었다.
세 번째 자연이라는 뜻인 ‘서드 네이처’는 어떤 철학을 가진 건축 스튜디오이며, 주로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지 소개해 주세요.
‘세 번째 자연’은 첫 번째 자연인 생태계와 두 번째 자연인 인간이 만든 환경이 융합된 새로운 하이브리드 조건을 뜻합니다. 도시와 경관이 더 이상 자연과 대립적으로 설계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자연과 깊이 호응하고 상생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반영합니다. 저희는 마스터플랜과 기후 적응 전략을 비롯해 도시 공간, 건축 설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아우르며 작업합니다. 디자인을 단순한 형태 창조가 아니라 도시의 ‘메타볼리즘(Metabolism, 대사 작용)’을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빗물 관리와 녹지 공간을 확대한 코펜하겐 기후 지구(Copenhagen Climate District), 빗물 관리를 위한 도보용 타일 시스템인 클라이밋 타일(Climate Tile), 코펜하겐의 대규모 인공섬 프로젝트 리네트홀름(Lynetteholm), 기후 대응형 공원 엥하베파르켄(Enghaveparken) 등 그동안 자연과 생물다양성, 재생 시스템을 도시 구조와 통합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기후 공원인 엥하베파르켄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배경과 당시 코펜하겐이 안고 있던 주요 도시 환경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극한 기후 현상에 점점 더 취약해지는 코펜하겐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2011년 이후 코펜하겐에서는 천년에 한 번 발생할 정도의 큰 폭우인 ‘몬스터 레인(Monster Rains)’이 몇 년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해 도시 기반 시설을 압도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도시 홍수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며 공원의 사회적 활용을 높이기 위한 시범 사업지로 베스터브로(Vesterbro)에 있는 엥하베파르켄 공원이 선정되었습니다. 1920년대에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조성된 이 공원을 다시 설계하는 데 있어 핵심 과제는, 그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단순한 녹지를 능동적인 도시 인프라로 재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코펜하겐 베스터브로 지역 한가운데 위치한 엥하베파르켄. 시민들의 일상 생활 공간이자 극한 폭우 시 물을 저장하는 기후 적응형 공원이다.
ⓒAstrid Maria Busse Rasmussen
이 공원을 설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세운 원칙은 무엇인가요?
엥하베파르켄은 공원이자 저수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혁신적인 모델입니다. 설계 과정에서 고려한 점은 기후 장치이면서도 여전히 공원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기술적 성능이 공원의 공공성이나 문화유산 가치를 해치지 않도록 이성적으로 접근하되 감성적이고 시적인 요소를 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방향 아래 네 가지 핵심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첫째, 대규모 빗물을 저장하고 흐름을 지연시킬 수 있도록 기능을 확보했습니다. 둘째, 물의 존재를 일상 속에서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아름다움과 여가 요소를 결합했습니다. 셋째, 아르네 야콥센*과 그의 동료가 만든 신고전주의적 공간 구조를 존중하며 보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후 위기를 단지 기술적인 대응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보고 몸으로 느끼며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 전반에 서사적 분위기를 녹여냈습니다.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 덴마크 모더니즘 디자인의 선구자. 건축과 가구 디자인을 아우르며 20세기 디자인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에그 체어’, ‘세븐 체어’ 등이 있으며 기능성과 조형미를 결합한 작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렇다면 홍수 방지와 물 저장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기술적 해결 방안을 적용했나요?
엥하베파르켄은 주변 지역에서 유입되는 빗물 약 2만 4000㎥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중앙 잔디밭은 대야 형태의 낮은 개방형 녹지로 조성되어 약 1만㎥의 빗물을 저장하고 나머지 용량은 공원을 둘러싼 홍수 방지 벽이 감싸안으며 폭우 시 통제된 방식으로 침수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2100년 즈음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100년 빈도의 폭우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비는 주변 건물 지붕에서 모아 지하 저수조에 저장한 뒤 가뭄 시기에 공원 관수로 사용됩니다. 이 물은 벽 상단의 수로를 따라 흐르며 공원 내 놀이 분수로 이어지고 방문객이 직접 보고 만지며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습니다. 이는 코펜하겐에서 공원 설계에 빗물을 유희적 요소로 활용한 선도적 사례입니다. 또한 물이 부족해 저수지가 마르면 놀이 시설이 중단되어 방문객들이 수위 상태를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엥하베파르켄에 적용된 물 저장 시스템의 단계별 설계도. 일반적인 비부터 10년, 100년 빈도의 폭우까지 대응 가능하다. ⓒThird Nature

물과 함께 노는 일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엥하베파르켄의 중앙 광장. 빗물이 고이면 수면을 반사하는 물거울이 되어주며 기후 변화의 흔적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Flemming Rafn, Third Nature

벽 상단에 마련된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은 중앙 분수 광장으로 모인다. 이는 물 순환 시스템을 시민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Flemming Rafn, Tredje Natur
공원의 심미적 가치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입니다. 이 공원의 초기 설계자인 아르네 야콥센의 공간 구조와 철학을 어떻게 해석하고 계승했나요?
1929년에 처음 조성된 엥하베파르켄은 당시 코펜하겐 시 건축가 폴 홀쇠(Poul Holsøe)가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조성한 곳으로 젊은 아르네 야콥센도 초기 설계에 참여했습니다. 이 공원은 어려움을 겪던 노동자 계층의 거주 지역에 질서와 품위를 더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정교한 기하학 구조와 축선(軸線), 파빌리온 등을 통해 새로운 시민적 이상을 담아냈습니다.
저희는 이 역사적인 구조를 최대한 존중하며 유지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기후 대응 요소들은 기존의 공원 배치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습니다. 홍수 방지 벽 역시 공원 가장자리를 따라 배치하되 낮은 단 형태로 만들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공원의 대칭 구조는 그대로 두면서 자연스럽게 높낮이를 조정해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습니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그 의미를 확장하고 현재로 이어가는 방식을 택한 거죠. 이 공원이 단지 복원된 공간이 아닌 회복력과 변화의 상징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기하학적 질서와 대칭 구조를 반영한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조성되었던 초기 공원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기후 대응 기능을 자연스럽게 덧댄 엥하베파르켄. ⓒFlemming Rafn, Third Nature
문화유산으로서 공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기후 대응 기능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도전은 기술적 성능과 시각적 일관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곳은 문화재로 지정된 공원이었기 때문에 모든 기술적 개입은 정당한 근거에 따라야했고 필요 시 원상 복구가 가능해야 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이 공원이 도시 기반 시설로 바뀌면서 파괴되거나 산업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했는데 이러한 인식을 극복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기후 대응 기능이 기술 시설처럼 보이지 않고 디자인의 한 요소로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조경 역사학자, 지역 주민, 행정 당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공원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고 그 결과 공원의 고유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의 스포츠 활동이 펼쳐지는 활력의 공간은 폭우가 쏟아지면 수천 톤의 빗물을 저장하는 일시적 저류지로 활용된다. ⓒFlemming Rafn, Third Nature

운동장 옆에 조성된 이 길은 평소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보행로로 쓰이다가 비가 오면 운동장으로 유입되는 물길이 되어준다. ⓒFlemming Rafn, Third Nature
공원 내 다양한 레벨 변화, 광장과 운동 공간 등을 포함한 다층적 공간 구성을 통해 시민들에게 어떠한 경험적 가치를 제공하고자 했나요?
저희가 전달하고자 한 경험적 가치는 공원을 ‘감각의 장(sensorium)’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기후 대응 기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시민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중앙 잔디 광장은 비가 오면 물거울이 되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벽천(Wall Fountain)과 놀이 분수는 직접 물을 만지며 상호작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공원의 높낮이 변화는 공간에 긴장감을 더하면서도 울타리나 안내 표지판이 없어도 영역을 자연스럽게 나눠줍니다. 정원과 운동 공간, 음악 무대 등 모든 구역은 기후 회복력을 갖추는 동시에 촉각적 즐거움과 공간적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엥하베파르켄은 여전히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민주적인 장소이며 이제 폭우가 내려도 하나의 장관으로 받아들여지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형 공원의 필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도시 공원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다른 도시들이 기후 위기 대응형 공원을 도입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도시 공원은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원은 기능과 아름다움을 통합해 기반 시설 자체가 곧 시민들과 만나는 공공 공간이 되는 곳입니다. 도시의 과거를 지우기보다 기존의 역사적 맥락 위에서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데이터는 숫자가 아닌 시민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험으로 전환해야 하며 기후 위험과 대응책을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감정에 닿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입니다. 기후 대응은 이성적인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감정적으로 공명할 수 있어야 비로소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자연과 도시,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을 지향하는 서드 네이처에게 ‘공공디자인’은 단순한 공간 구성 이상의 의미일 듯합니다. 공공디자인의 본질과 그 사회적 책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공공디자인은 집단적 스토리텔링의 한 형태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미래를 어떻게 그려 나갈지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공디자인이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은 ‘개방성’, ‘이해 가능성’, ‘참여 유도’에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도발하고 질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공공디자인은 단순히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에게 성찰과 변화의 가능성을 제안해야 합니다. 엥하베파르켄은 그러한 의미에서 비와 도시, 시민이 함께 새로운 도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동 저자로 참여하도록 설계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드 네이처가 바라보는 ‘미래 도시’는 어떤 모습이며, 앞으로 도시와 공원이 어떻게 공존해야 한다고 보나요?
미래 도시는 생태적 순환과 흐름을 스스로 감지하고 조절하는 ‘인텔리전트 메타볼릭 시티(Intelligent Metabolic City)’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공원은 도시의 자투리 공간이 아니라 회복력과 생물다양성, 돌봄을 실현하는 핵심 엔진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공원은 미적 편의 시설만이 아니라 물을 저장하고 공기를 식히며 다양한 생물종을 품고 지역 공동체를 연결하는 필수적인 도시 인프라가 될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공원은 여전히 기쁨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도시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이 맥박처럼 활동하는 시설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터뷰이 : 플레밍 라픈 덴마크 건축가, 서드 네이처 공동 창립자
덴마크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덴마크 건축가 협회(Medlem af Akademisk Arkitektforening, MAA)와 덴마크 조경가 협회(Medlem af Danske Landskabsarkitekter, MDL)의 회원으로 활동한다. 코펜하겐에 기반을 둔 건축 스튜디오 서드 네이처의 공동 창립자로 재생 가능성과 기후 대응성을 중심으로 한 도시 설계를 선도하며 건축과 조경, 인프라를 아우르는 융합적 접근을 실천하고 있다.
글: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