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정보
기획특집
- 작성일:
- 2026-07-03
- 작성자:
- 박은영
- 조회수:
- 462
[기획] 공간의 새로운 쓰임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68호(202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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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시험하는 시간들
도시 공간은 오랫동안 완성된 결과물처럼 여겨졌다. 충분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설계하고 지으면 그 모습 그대로 오래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팬데믹을 지나며 흐름이 달라졌다. 비워진 거리와 유휴공간을 마주한 여러 도시가 일정 기간 새로운 프로그램과 활동을 시도해보는 방식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임시 공원, 팝업 광장, 한철 거리 프로그램처럼 짧게 열리는 팝업 형태의 공공공간은 거리를 어떻게 사용하고 빈 땅에 무엇을 채울지를 시민들과 함께 실험하고 보완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임시 공간이 도시의 운영 방식을 어떻게 바꿀까.
단기 실험 중 일부는 시민의 호응에 힘입어 상설로 자리잡으며 거리와 공공공간에 새로운 쓰임과 역할을 부여한다. 비어 있던 도심의 땅과 건물을 한시적으로 되살린 사례, 갈수록 거세지는 폭염에 맞서 거리를 식히는 임시 공간, 자동차가 차지하던 길을 시민의 문화 공간으로 되돌린 거리까지 국내외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층 다채로워진 도시의 면모를 살펴본다.
● 도심 유휴공간에 깃든 새로운 쓸모
재개발을 기다리거나 쓰임을 잃은 도심의 빈 땅과 건물을 방치하는 대신 한시적으로 되살리는 시도가 늘고 있다. 정원과 장터, 예술가의 작업실 등으로 바꿔 비어 있던 자리를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지역에 활력을 더하고 한시적 쓰임이 자리 잡아 더 오래도록 이어지는 변화의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도심 빈터에 피어난 계절 정원, 필라델피아 PHS 팝업 가든
미국 필라델피아의 ‘PHS 팝업 가든(PHS Pop UP Gardens)’은 도심 한복판의 빈 부지를 봄부터 늦가을까지 정원으로 바꿔 누구나 모이는 장소로 여는 프로젝트형 공간이다. 비영리 원예 단체 ‘펜실베이니아 원예협회(PHS, Pennsylvania Horticultural Society)’가 운영하는 이 사업은 2011년 도심 한 모퉁이 땅에 정원을 연 것이 시작이었다. PHS는 개발을 기다리는 빈 땅이나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부지를 골라 도시 곳곳을 옮겨 다니며 정원을 선보인다.
2014년부터 문을 연 사우스 스트리트 1438번지 정원은 가장 오래 자리를 지켜온 대표 거점 공간이다. 정원의 중심을 차지하는 큰 느티나무를 비롯해 이곳을 채우는 식물은 PHS가 매년 여는 ‘필라델피아 플라워 쇼’에서 전시를 마친 수백 점의 화초와 관목을 옮겨 심은 것으로, 한 행사의 자원을 도심 녹지로 순환시키는 지속 가능성의 실험이기도 하다. 현재는 마나윤크와 사우스 스트리트 두 곳에서 매년 3월 말부터 10월까지 운영되며 식물 교환 모임, 무료 클래식 공연, 원예 워크숍 같은 프로그램이 이루어진다.

사우스 스트리트의 PHS 팝업 가든. 2014년 개장 이후 도심 속 녹지와 휴식 공간을 제공하며 공연과 워크숍,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열리는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다. 사진 출처: phsonline.org

마나윤크에 위치한 PHS 팝업 가든.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부지를 녹지 공간으로 전환한 사례로 주민과 방문객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야외 휴식처로 운영된다. 사진 출처: phsonline.org
지역 경제 효과까지 거둔 임시 공간, 런던의 민와일 유즈 실험
영국 런던의 사회적 기업 ‘메이크 시프트(Make Shift)’는 장기 용도가 정해지기 전까지 비어 있는 땅과 건물을 한시적으로 살려 쓰는 ‘민와일 유즈(Meanwhile use)’를 사업 모델로 삼는다. 독립 사업자들이 입주하는 공간을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며 소규모 사업자와 지역 주민을 위한 기회로 바꾸려는 시도다. 첫 프로젝트인 ‘팝 브릭스턴(Pop Brixton)’은 런던 자치구 중 하나인 람베스구청(Lambeth Council)이 공모한 사업의 당선작으로, 옛 주차장 자리의 비어 있던 구청 소유 부지에 50여 개의 선적 컨테이너를 둘러 식음, 소매, 창업 공간을 만들었다. 2015년 개장 당시에는 3년 운영이 조건이었으나, 성과가 좋아 거듭 연장됐고 연간 약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과 함께 매년 약 900만 파운드의 경제 효과를 낸 것으로 평가됐다. 이후 해당 부지에 288가구 규모의 주택 개발이 승인됨에 따라 팝 브릭스턴은 2026년 말까지 운영된 뒤 문을 닫을 예정이다.
두 번째 프로젝트인 ‘페컴 레벨스(Peckham Levels)‘는 수년간 제대로 쓰이지 못하던 서더크구청(Southwark Council) 소유의 다층 주차장을 개조한 곳이다. 비어 있던 일곱 개 층의 주차 구획을 칸막이로 나눠 예술가를 위한 메이커 스튜디오와 공용 작업실로 바꾸고 위층에는 음식점과 바, 행사·전시 공간, 어린이 놀이터까지 만들었다. 단기 임대로 시작했으나 지역 청원과 초기 성과에 힘입어 임대가 연장됐고 서더크구청으로부터 장기적인 문화 거점으로 인정받았다. 메이크 시프트는 옛 과자 공장 부지를 개조해 2020년 문을 연 ‘해크니 브리지(Hackney Bridge)’까지 운영하며 임시 활용의 실험을 런던 곳곳으로 넓혀가고 있다.

재개발을 앞둔 유휴공간에 재사용 컨테이너를 활용해 조성한 런던의 임시 복합 공간 팝 브릭스턴. 지역 창업가와 소상공인, 주민들을 위한 일터와 상점이 운영되었으며 2026년 말 문을 닫을 예정이다. 사진 출처: ⓒWilliam Barton, Tim Crocker / archdaily

페컴 레벨스는 사용이 중단된 7층 규모의 주차장을 창작 스튜디오와 공동 작업 공간, 문화 시설로 재생한 사례로 예술가와 창업가,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지역 커뮤니티 거점으로 활용된다. 사진 출처: ⓒTim Crocker / archdaily

런던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 내 위치한 해크니 브리지는 다섯 개의 건물이 중정을 둘러싼 구성으로 업무공간, 공공시설, 이벤트 공간, 시장, 레스토랑, 바 등이 어우러져 있으며 1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현재 커피 로스터리, 목공방,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등 지역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으며 운영기간이 끝나면 지역 개발 계획에 따라 주거지로 재개발될 예정이다. 사진 출처: ⓒTim Crocker / nla.london
● 기후위기 시대의 공공공간
여름 한철, 자동차로 가득했던 도로를 시민에게 내어주며 갈수록 거세지는 도시의 폭염에 맞선다. 도심 한복판에 그늘과 물, 쉴 자리를 들인 임시 공간은 더위를 식히는 동시에 자동차가 차지하던 공간을 시민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되돌린다.
여름 해변으로 변신한 강변 도로, 파리 플라주
프랑스의 ‘파리 플라주(Paris Plages)’는 매년 여름 센강 옆 자동차 도로를 막아 도심 한복판에 인공 해변을 펼치는 임시 공공공간 프로젝트다. 2002년 휴가를 떠나지 못하고 여름 내내 도시에 남아 일하는 시민들을 위해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매년 7월부터 8월까지 열리는 이 행사는 백사장과 선베드, 야외 부대시설, 어린이 놀이 기구와 수상 스포츠 등이 마련된다. 2025년에는 센강에서의 수영이 금지된 지 100년 만에 센강 곳곳에 물놀이장이 열리며 도심 속 피서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임시 실험으로 시작했지만 그 효과와 인기는 도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센강을 시민에게 되돌려주자는 여론에 힘입어 이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는 2017년 차량 통행이 영구 중단됐고, 그 자리에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상설 공원 ‘리브 드 센(Parc Rives de Seine)’이 들어섰다. 한여름의 해변이 자동차 도로를 공원으로 바꾸며 공공 녹지와 휴식 공간 확대, 여름철 폭염 대응이라는 도시의 숙제를 함께 풀어냈다.

도심 속 해변을 구현한 파리 플라주는 매년 여름이면 센강을 휴식 공간으로 바꿔 시민들에게 피서지를 제공한다. 사진 출처: frenchmoments.eu

파라솔과 의자는 물론 수영장과 안개 분사 장치 등을 설치해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출처: ⓒMarc Verhille, Jean-Baptiste Gurliat / paris.fr
더위에 맞서 거리를 식히는 야외 거실, 빈의 쿨 스트리트
오스트리아 빈의 쿨 스트리트(Coole Straßen)는 여름 폭염에 가장 취약한 거리를 골라 차량을 막고 그늘과 물, 좌석을 들여 ‘야외 거실’로 바꾸는 임시 공공공간이다.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데이터였다. 2018년 오스트리아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았다. 빈은 기온과 인구 구성을 종합해 어디를 가장 시급히 식혀야 하는지 보여주는 ‘도시 열지도(Hitzekarte)’를 만들었다. 이 지도는 폭염 위험이 심각한 곳에 고령자와 어린이 같은 더위 취약 계층이 밀집해 있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줬다.
빈은 이 지도를 근거로 2019년 8월, 가장 더운 란트슈트라세(Landstraße), 파보리텐(Favoriten), 오타크링(Ottakring) 세 개의 구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늘 좋은 거리 한 곳씩 골라 약 4주간 차 없는 거리를 만들고 분무 시설과 좌석, 녹지를 마련해 시민이 머물 수 있는 야외 거실을 만들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시범 사업 뒤 시행한 주민 설문에서 92%가 재시행을 희망했고 기후 측정에서는 주변 기온이 최대 5도까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호응을 바탕으로 이듬해 2020년에는 빈 전역 18개 거리로 확대했고, 이와 별도로 네 개 거리를 영구적인 시설을 갖춘 ‘쿨 스트리트 플러스(Coole Straßen Plus)’란 이름으로 새로 조성했다. 대표적인 곳이 7구 노이바우(Neubau)의 ‘쿨 마일 치글러가세(Kühle Meile Zieglergasse)’다. 약 1km 구간에 24그루의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사람과 동물을 위한 식수대와 온도를 낮추는 ‘쿨링 아치(Kühlbogen)’가 설치되어 있으며, 도로에는 밝은색 포장을 입혔다.

시범 사업으로 시작된 쿨 스트리트의 성과를 바탕으로 영구 조성된 빈의 ‘쿨 마일 치글러가세’. 녹지와 휴식 공간, 물 분사 장치 등을 갖춘 기후 적응형 거리로, 폭염 속 보행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사진 출처: smartcity.wien.gv.at
● 동네 문화 공간으로 바뀐 자동차 거리
평소 자동차가 달리던 길이 특정 기간에는 차량 통행을 막고 시민들이 걷고 쉬고 어울리는 공공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다양한 문화 행사로 거리에 활기를 더한 이 시도는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마침내 상설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차 없는 거리, 뉴욕 오픈 스트리트
미국 뉴욕의 오픈 스트리트(Open Streets)는 자동차로 채워졌던 거리를 막아 시민을 위한 보행, 휴식, 상업 공간으로 바꾸는 프로그램이다. 팬데믹 첫해인 2020년,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거리를 안전한 야외 공간으로 쓰자는 취지로 뉴욕시 교통국(DOT)이 시작했다. 주말마다 거리를 막아 행사를 열던 기존 ‘위크엔드 워크(Weekend Walk)’ 방식을 팬데믹 상황에 맞게 확장한 임시 조치였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운영 방식이다. 교통국이 거리 지정과 제도의 틀을 마련하고 실제 현장 운영은 상인회, 비영리단체, 학교, 종교 기관 같은 지역 단체가 맡는다. 이들이 직접 파트너로 참여해 바리케이드를 설치·관리하고 프로그램을 꾸린다. 거리는 용도에 따라 차량을 완전히 통제하는 ‘전면 차단’, 학교 앞 거리를 비우는 ‘학교 전면 차단’, 서행·지역 차량만 허용하는 ‘제한적 지역 접근’ 세 유형으로 나뉜다. 규모도 상당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 510개 거리가 운영됐다. 대표 사례는 퀸스 잭슨하이츠(Queens Jackson Heights)의 34번가 ‘파세오 파크(Paseo Park)’다. 26개 블록에 걸친 주거지 거리를 공원이 부족했던 지역 특성에 맞춰 주민을 위한 휴식 및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했다. 그 결과 매연과 소음을 맑은 공기와 안전한 환경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뉴욕 차 없는 거리의 모범 사례가 됐다. 이 거리는 상설 공간으로 전환돼 현재 8900만 달러 규모의 정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오픈 스트리트는 도입 초기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2021년 한시적 비상 조치에서 상설 프로그램으로 전환됐고, 2024년에는 신청 절차와 운영 기준을 명문화한 규칙도 제정됐다. 2026년 1월 뉴욕주 감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오픈 스트리트는 운영 첫 해와 최근 연도 사이 6만 7000개가 넘는 소매·외식업 일자리 회복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시의 오픈 스트리트는 차량 중심 도로를 사람 중심 공간으로 전환해 주민들의 휴식과 교류,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는 열린 공공공간으로 활용한다. 사진 출처: nyc.gov

뉴욕 퀸즈 잭슨하이츠 34번가를 따라 1.3 마일 길이로 조성된 파세오 파크. 2020년 팬데믹 당시 안전한 야외 공간이 필요했던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 이 거리는 2025년 상설 공원으로 전환이 확정되었다. 사진 출처: ⓒLorie Reilly, Kisha Bari / paseopark.org
자동차 교량을 시민에게 돌려주다, 서울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
서울 한강 잠수교에서 열리는 ‘차 없는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는 2022년 ‘잠수교를 온전히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1년 중 대부분 자동차가 달리는 다리지만 봄·가을 시즌 매주 일요일이면 차를 비우고 시민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바뀐다. 이를 통해 한강 보행교를 미리 체험해 보고 관광 자원으로서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있다. 축제 기간에는 플리마켓과 푸드트럭, 거리 공연, 야외 영화관, 포토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특히 2024년에는 프랑스 브랜드 루이뷔통이 이곳을 패션쇼 무대로 삼으며 잠수교가 다양한 행사를 품을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줬다. 호응은 수치로 나타났다. 축제는 2022년 하반기부터 2025년까지 누적 530만 명 이상이 다녀간 서울의 대표 야외 콘텐츠로 성장했고, 2026년 상반기에만 117만 명이 찾아 전년 동기보다 13% 늘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잠수교는 2027년부터 한강 최초의 ‘보행 전용 교량’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길이 795m, 너비 18m로 한강에서 가장 짧고 수면과 가까운 다리라는 강점을 살려 평상시에는 산책로로 쓰이다가 상황에 따라 공연, 전시, 축제 무대로 활용될 계획이다.

차량 통행을 막고 시민을 위한 거리로 변신한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 봄·가을 시즌 매주 일요일마다 시민에게 개방해 달빛 식당, 달빛 상점, 썸머 시네마, 선셋 비치 등 다양한 행사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사진 출처: festa-ddooddoo.com
글: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