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작성일:
- 2022-06-28
- 작성자:
- 소식지관리자
- 조회수:
- 1433
[기획] 골목길 재생 전문가 인터뷰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20호(202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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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여행하고 기록하는 사람들
2016년부터 해방촌 일대를 기록해온 해방촌 마을기록단이 2021년 우리마을 기록단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로운 기로에 접어들었다. 골목길에서 이웃과 만나 상점 간판과 들풀과 동네 소리를 귀하게 수집하며 마을을 알고 도시를 이해했던 자신들의 방식을 더 널리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해방촌 마을기록단을 끌고 있는 심수림 건축사사무소 리얼랩 도시건축 실장을 만나 물었다. 도대체 골목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계속 그곳으로 향하느냐고.
해방촌 마을기록단은 해방촌 신흥시장 일대를 비롯한 생활가로를 기록하는 모임이었다. 사진 제공: 해방촌 마을기록단
해방촌 일대를 기록하는 리얼랩 도시건축은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2015년부터 허길수 건축가와 건축사사무소 리얼랩 도시건축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크게 건축설계와 지역연구로 나뉩니다. 저는 지역연구 부문에서 마을이나 골목을 살피고 기록하며 더 나은 모습을 제안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민과 골목에서 만나는 일이 잦은 편입니다. 필동으로 사무실을 옮긴 지는 겨우 1년 됐고요. 그전까지 사무실과 집 모두 해방촌에 있었어요.
‘우리마을 기록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방촌 마을기록단’에 대해 먼저 듣고 싶어요. 어떤 계기로 만들었나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입니다만, 해방촌에 살 때였어요. 저층 주거지 사이에 있는 3층 짜리 집이었죠. 첫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엄마란 타이틀을 처음 갖게 됐잖아요. 아이와 둘이 집에 있으려니 괜히 두렵고 겁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마음이 녹는 순간이 한번씩 있었어요. 동이 트는 새벽 6~7시 무렵 늘 우리집 앞 골목에 멈췄던 야채 트럭을 창문 너머로 볼 때였죠. “싱싱한 채소가 왔어요” 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골목을 채우면 동네 어머니들이 나와서 트럭 주위를 에워싸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위안이 되더라고요. 내 기분은 이렇게 오락가락 해도 이 사람들은 때가 되면 늘 같은 장소에 이렇게 같은 에너지로 모이는구나 싶었어요. 그 모습을 혼자 보다가 사진과 소리로 기록하면서 살고 있는 마을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재미와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 같아요. 변화하는 마을의 단상을 잘 남겨 두어야한다는 의무감, 이런 일을 이웃들과 함께 한다면 어떨까란 생각도 했고요. 해방촌도시재생지원센터의 주민제안사업에 선정돼 본격적으로 네이버에 카페를 개설하고 골목에 포스터를 붙여 함께 기록할 이웃을 모집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나요?
해방촌에 살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해방촌이 궁금한 사람, 해방촌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 해방촌에서 재밌는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을 모집했어요. 약 30명 내외의 구성원으로 운영되었어요. 건축가, 디자이너, 다큐멘터리 감독, 마을연구자 등 다양한 직업인이 있었고, 초등학생부터 골목 가게의 사장님들, 어르신들도 동참해 주셨습니다. 안건마다 기록 활동을 제안하고 끌어가는 기획단과 실제 활동하는 수집단으로 나눠서 역할했고요.
마을기록단은 주민 스스로 골목을 걸으며 마을을 기록하는 노력과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진 제공: 해방촌 마을기록단
‘마을’이란 영역은 곧 ‘골목’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 같아요. 해방촌에서는 생활가로를 기록 범위로 삼으셨죠.
해방촌 오거리부터 해방촌 성당까지 이어지는 생활가로를 주요한 기록 대상으로 삼았어요. 생활가로란 동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부대끼는 장소를 말하는데요. 특히 해방촌 생활가로에는 버스정류장을 비롯해 과일가게, 정육점, 편의점 등이 몰려 있어 마을 사람들이 자주 오가고 그에 따라 마을의 변화 양상을 한눈에 목격할 수 있는 장소였어요. 한 자리에서 몇 십 년 째 장사하는 사장님도, 엊그제 막 문을 연 사장님도 이 길에서 다 만나죠. 그래서 그 골목길은 해방촌을 이해하는 데 특히나 중요한 장소였어요.
어떤 방식으로 골목의 무슨 장면을 기록했나요?
주로 기획단원이 자신의 능력치를 바탕으로 주민과 골목에서 함께 해봄직한 기록 방식을 만들고 제안하는 구조였는데요. 몇 가지 예를 들면, <소리수집>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핸드폰 녹음기로 골목의 소리를 녹음하고 그것을 마을 지도에 표시해 만든 제작물이에요. 해방촌 신흥시장을 메우는 활기찬 소리가 있는가 하면 길고양이의 조그마한 울음소리도 주목할 수 있죠. <간판수집>은 생활가로의 상점 간판을 사진으로 남기고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읽어보는 시도였어요. 해가 바뀌어도 그대로인 상점이 있고 해마다 새로운 간판을 단 상점이 있었죠. 다른 한편으로는 저희 능력에서만 갇혀 있고 싶지 않아 자신만의 기록 도구가 있는 친구를 끌어들이기도 했어요.
간판 변화상을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나열한 <간판수집>. 사진 제공: 해방촌 마을기록단
골목 담장이나 모서리에 살고 있는 식물을 시아노타입 기법으로 인화한 <틈새식물도감>. 사진 제공: 해방촌 마을기록단
담장, 간판 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준 <장소 탁본>과 신문에 보도된 동네 소식을 수집하는 <옛기사 오려모으기 책>.
사진 제공: 해방촌 마을기록단
예를 들어 어떤 작업이 있죠?
<장소 탁본>이 그런 경우였어요. 해방촌에 살았던 한 목판화 작가에게 맨홀, 담장 벽돌, 쇼윈도의 스티커처럼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무엇들을 종이로 옮겨보자고 제안해서 마을 어린이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탁본을 해봤어요. 또 <열대야_위성영상과 GIS로 보는 열지도>는 GIS 데이터 전문가인 지인에게 “당신의 언어로 우리 마을을 표현해달라”고 요청해 만든 기록물이에요. 이렇게 서로 다른 기록 방식 열다섯 개를 엮어 <우리마을 탐구생활> 키트를 제작했고요.
그 키트는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프로젝트 결과물을 홈페이지에서 일부 공개하고 있지만 배포는 하지 않았어요. 기록의 중요성은 ‘기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골목을 이해하고 이웃을 만나는 과정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문가의 가이드가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이유로 저희가 만든 도구들이 ‘해방촌 마을기록단’ 단체의 성과로 남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문가 한 명이 기록하는 것보다 주민 개개인이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기록 방식 또한 창작자 개개인의 존재로 운영되고 이해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기관에서 마을 탁본 워크숍 의뢰가 왔을 때도 그 방법을 처음 제안한 작가를 연결해주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만 저희가 지원해요.
서로 다른 열다섯 개 활동을 엮어 <우리마을 탐구생활> 해방촌, 후암동 편을 완성했다. 사진 제공: 해방촌 마을기록단
2021년 이름에서 ‘해방촌’을 떼고 ‘우리’를 붙였어요. 어떤 포부가 있었나요?
집값이 올라서, 근무지가 바뀌어서,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되어서 등 여러 이유로 기획단의 절반이 해방촌을 떠나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떠난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지, 새로운 사람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지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 결과 전자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마을을 기록한다’는 가치가 해방촌 마을기록단의 핵심이었고 우리 개개인이 씨앗이 되어 곳곳에서 마을기록이란 생명을 피워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해방촌 마을기록단 활동이 알려지며 다른 마을의 활동을 지원하거나 이끄는 기회가 많아진 덕분이기도 해요. 조금 앞서 그 방식을 고민한 사람으로서 가이드를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마을 기록단은 현재 몇 명이 운영하나요?
7명이요. 여전히 하는 일도, 사는 동네도 다른 사람들이에요. 제주도에 있는 분도 계세요. 안건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수시로 소통하는 편이에요.
마을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는지 궁금하네요. 해방촌처럼 생활가로를 중심으로 하나요?
마을마다 달라요. 그래서 기록이란 활동에 앞서 마을을 어디까지로 생각하는지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를 꼭 가져요. 해방촌에서는 그것이 생활 가로였지만 다른 마을에서는 광장일 수 있고 공원일 수 있죠.
이러한 활동에서 유념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요?
스스로 이웃을, 골목을, 마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아는 데에 있다고 봐요. 사실 많은 기관에서 “주민들이 재밌게 마을을 기록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란 목적으로 저희를 불러주시지만요. 저희는 집밖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요. 골목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는지, 공공성이란 무엇인지, 도시에 왜 공공성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더 재미나게 기록할 수 있다고 믿어요.
골목과 마을의 역할과 구조를 이해해야 그 기록도 유의미하다는 뜻이군요.
올봄에 개인 활동보다는 업무 차원으로 용인문화재단과 용인 아카이빙 프로젝트 김량장동 편을 진행했어요. 12명의 주민분과 2개월 정도 오일장이 열리는 가로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였죠. 활동가분들께 무엇을 기록하고 싶으냐고 처음 여쭤봤을 때는 엇비슷했어요. 오일장에서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오래된 상가가 어딘지 등이었죠. 그러나 이 활동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나서는 색다른 주제를 꺼내시더라고요. 길에 있는 의자들이 어떤 모양인지, 사람들이 거기에서 어떻게 앉는지, 유독 많은 벽화들은 누가 그린 건지 골목을 보는 각자의 관점이 한층 또렷해 졌죠. 그러니까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더 재미를 느끼게 되고요.
워크숍 앞단에는 마을기록의 이유, 도시의 공공성에 대한 공감대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사진 제공: 해방촌 마을기록단
골목길은 어떤 공간인가요?
골목길은 만만해요. 역사적인 장소나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길을 기록하라면 선뜻 나서지 못할 거예요. 비전문가인 자신이 얼마나 작아 보이겠어요. 하지만 골목길은 나도 해볼 수 있다는 마음을 만들어요. 한 번은 이런 분을 만났어요. 마을기록을 왜 하느냐고 묻는 제 말에 ‘마음을 다친 일이 있어 바깥활동에 두려움을 느낀다’라며 ‘이 활동을 계기로 집밖을 편안하게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답한 분이셨죠. 처음엔 자신이 늘 고개를 숙이고 걸으니 사람들의 오래된 신발의 모습을 기록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최종 결과물은요. 휠체어를 타는 친구와 함께 갈 수 있는 베리어프리 상점 지도였어요. 그건 바깥에서 눈으로 훑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실내로 들어가 사장님에게 여러 조건을 묻고 답을 들어야 완성할 수 있죠. 이 활동으로 그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고 타인과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이 너무 뿌듯했어요. 창밖의 골목 풍경에 안도감을 느낀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기록이 필요한 마을에 그곳 주민들의 방식으로 기록 활동을 돕는 지금의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민간 기록 활동이 휘발되지 않고 마을의 공공재로서, 다양한 사례들이 만들어지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많은 한계와 숙제를 가진 시민들의 기록 활동을 즐겁게 이어가는 것이 저희 계획입니다.
우리마을 기록단은 골목을 누비며 오늘 우리의 일상을 기록한다. 사진 제공: 해방촌 마을기록단
글: 윤솔희, 담당: 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