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Aging in place
작성일:
2023-03-22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1538

[기획]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는 디자인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29호(202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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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이경미 서비스디자인 전문가가 말하는

Aging in Place 


제품 & 서비스 디자인 전문회사 사이픽스를 운영하는 이경미 대표는 대부분 암울하게만 그리는 초고령사회를 디자인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진행한 결과물을 보면 베이비부머 세대인 자신이 고령자 분류에 들어가게 되며 느끼게 된 심리적 특징이, 고령자가 된 부모를 모시고 지켜보며 느낀 신체적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잘 녹아 있다. 제품부터 사회 시스템까지 디자이너가 부지런히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경험담을 전한다. 


더 나은 초고령사회는 누가 디자인해야 하는가?

‘디자인은 혁신과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에 몰두하는 디자인 방식은 미학적 특성을 기본으로 하며 그 의미, 구조, 기능, 사용하는 경험을 함께 다룬다. 사물에 입히는 외형만이 아닌 디자인 대상의 본질적 가치를 바라보게 한다. 초고령사회의 도래에 우리 디자인은 어떻게 사람중심의 혁신에 기여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생산주의 패러다임으로, 생산집단과 비생산집단으로 이분화하여 노인을 비생산집단, 사회적 부담의 대상으로 보는 담론은 노년층을 부양과 복지의 대상으로 쉽게 간주하고 있으며, 노인 개개인들도 안정적인 노년생활이 보장되지 않은 긴 노년생활에 대한 걱정과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참여에서 배제된 채로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예견되어 노년의 시기는 온통 암울하게만 그려지고 있다.  

인구학적 분류로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하는 나는 아직 인식적으로는 고령자 분류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전·후기 세대로 보았을 때 대략 1400만 명, 2022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인구이며 고속 성장의 수혜자, 비교적 높은 교육적·인적·경제적·정치적 자산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베이비부머 세대는 노년기에도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삶의 성장을 추구하며, 청·장년기에 누렸던 사회적 과실을 되돌리기 위한 사회적 기여 활동에도 열려있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암울한 초고령사회를 바꾸려면 베이비부머 세대가 적임자다. 이제 바로 코앞에 닥친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스웨덴에서도 변화를 만들어낸 동기는 비슷했는데 새비햄멧(Sabyhemmet)의 혁신적인 요양시설은 50대의 움직임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초고령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어 ‘늙어도 괜찮아 디자인 연구소’를 만들었다. 다가올 미래를 암울하게 예측하기 보다 도전과 현명한 시행착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늙어서 전혀 괜찮지 않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다 보니 자연적으로 노년의 나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실행적 문법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년를 보내는 ‘Aging in Place(이하 AIP)’. 사회활동에 많이 참여하고 애착이 있을수록 노년기의 삶의 만족도가 높게 유지된다. 활력 있는 노년, 건강을 적절히 유지할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 ‘노인들의 핫플’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흥시 보건소가 ‘공공디자인으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 공모사업’으로 따낸 예산 8억 원으로, 보건소 앞마당 자투리 공간을 노인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였다. 맨 먼저 시흥시 보건소와 대야종합사회복지관 주변에 사는 노인들을 관찰하고 행동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독거노인이 많아 복지관에 식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현장에서 종일 따라다니는 그림자 조사법을 해보니 집과 복지관만을 오갔으며,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엔 복지관이나 보건소 앞의 온·냉방기 앞에 옹기종기 모여 계시는 것과 남성 어르신은 그 장소에 끼지 못해 배재되는 패턴도 관찰되었다. 노년기에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 영양, 정서, 위생 이 네 가지가 중요한데, 운동은 거의 안 하시고 식사도 복지관 식사가 거의 전부였으며 ‘그냥 시간을 보내니’ 무료해 하셨고 우울감도 가지고 있었다. 대야동 어르신들에게는 ‘제3의 행복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앞마당에 냉·난방이 가능한 ‘늠내건강학교’라는 가변 공간을 만들었다. 폴딩 도어를 열면 외부 공간과 연결이 되며 매일 체조를 할 수 있고 활동적인 게임과 산책도 가능하다.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엔 문을 닫으면 내부 활동이 가능해 계절에 상관없이 체조할 수 있으며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고, 안쪽에는 대형 오븐이 있어 요리 교실도 가능하다. 도시락 만들기나 쿠킹을 할 수 있어 영양도 챙기고, 요리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으며, 음식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자존감도 높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앞마당에는 사계절을 인지하며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꽃이나 요리에 필요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온실도 만들고, 온실 안에는 친구들과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도 마련했다. 또한 매일 프로그램, 일주일 프로그램, 계절별 프로그램을 만들고, 모든 프로그램에는 남성 어르신을 꼭 모실 수 있도록 기준도 마련했다. 출석률이 높으면 상을 주는 보상시스템은 덤이다. 노인들이 고립되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 잘 사용하지 않던 자투리 앞마당은 이렇게 어르신들에게 사랑받는 핫플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실행적 문법을 새롭게 만들어낼 줄 아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인 혁신가들과 함께 디자인했다고 생각한다. 3년이 지난 지금은 더욱 활성화되어 많은 서비스와 콘텐츠가 왕성하게 생성되고 있는 늠내건강학교. 지역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활동하는 행복한 공간이 세 걸음 쯤 다가온 셈이다.

 

어르신들의 체조와 요리교실 등이 열리는 시흥시 늠내건강학교

어르신들의 체조와 요리교실 등이 열리는 시흥시 늠내건강학교. 사진 제공: 사이픽스


사계절을 인지하며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시흥시 늠내건강학교 미니온실

사계절을 인지하며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시흥시 늠내건강학교 미니온실. 사진 제공: 사이픽스


기본은 무엇인가? 

현재 세상에는 노년을 위해 디자인된 결과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노년기의 몸 상태를 배려한 디자인 제품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최소한의 가격을 중심으로 한 복지용품들처럼 저절로 병원이나 시설을 떠올리게 되는 제품들이 많다. 또한 곳곳에서 안경을 코 위로 올리고 글자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작은 폰트가 세련되었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선 노년의 눈 상태를 고려한 큰 폰트와 확실한 명암대비 등을 고려한 시각디자인도 잘 보이지 않는다. 

 

노인을 위해 디자인한 소파와 침대 디자인

노인을 위해 디자인한 소파와 침대 디자인. 사진 제공: 사이픽스


서울시 주관으로 1인 독거노인의 유니버설 가구를 디자인할 기회가 생겼다. 시범사업 대상지는 ‘노인지원주택’으로 아파트형의 시니어 주거 공동체나 은퇴자 공동체 마을이 아닌 ‘빌라형’ 모델이었다. 2층에 사회복지사가 있어 병원 동행 서비스나 공과금 처리 등 최소한의 일상생활 돌봄을 지원한다. 먼저 인터뷰와 개개인 가구 사용 행동패턴 관찰, 현재 사용 중인 가구들의 치수를 재는 일부터 시작했다. 대상은 건강한 노인은 물론 여러 기능이 점차 감소되고 생물학적 예비 능력이 일정수준 이하로 저하된 허약 노인이다. 타인의 절대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신체기능 장애를 보유한 노인은 제외했다. 여기에 사는 분들은 복합 질환이 있는 분, 허리가 많이 아픈 분, 편마비가 있는 분, 하지가 불편한 분, 기력이 없는 분등 다양한 불편함이 존재했다. 이분들의 일상을 관찰한 결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기립에 이슈가 있는 침대와 소파를 선택해 신체적·사회적 활동을 지지하는 유니버설디자인 가구로 디자인을 하게 했다. 눕고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든 어르신들의 행태 전반을 지원하는 기능성 프레임과 안마기 등 각종 전자기기 등을 안전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밤에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야간보조등을 부착하는 등의 기능을 정리했으며 낙상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높이 약 400mm ~450mm 유니버설디자인 치수를 규정했다. 낙상방지 및 기립지지 프레임은 질환 특성에 따라 교체 가능한 시스템(좌우 배치, 앞 뒤바꿈, 양쪽 설치 등)으로 제공했다. 소파에 앉아 종일 TV 시청을 하는 패턴에서 공동체 친구들과 활발하게 교류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는 자유로운 기립을 돕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들이 평소 사용하는 대부분의 소파는 좌판의 깊이가 깊어서 허리가 바로서지 않아 쿠션으로 지지하고 있어 기립뿐 아니라 허리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좌판 깊이는 약 450mm, 좌판 너비 약 550mm, 등판 높이 약 530mm 그리고 머리받침이 필요하고, 기립 최적 각도는 110~115도다. 기립을 돕기 위해선 잡고 당기기 좋은 언더 컷의 손잡이가 유효하며 양손으로의 지지, 너무 푹신하지 않은 쿠션감도 중요하다. 부가적으로 평소엔 다리를 올리는데 사용하나 요양보호사나 손님과 함께 있을 땐 스툴이 되는 오토만도 디자인했다. 그리고 누구나 연구결과를 참조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디자인 가이드북을 만들어 배포했다.

제품부터 사회 시스템까지 이제 우리가 부지런히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생각의 방향이 잡혀도 해내는 일은 늘 한 걸음씩이기 때문이다.


글: 이경미 사이픽스 대표


이 글을 쓴 이경미는 디자인 중심의 혁신(Design Driven Innovation)을 만들어 내는 제품 & 서비스 디자인 전문회사 사이픽스 대표다. 루펜의 물방울 가습기, 아이리버의 미키마우스 MP3플레이어, 현대자동차의 미래시나리오 등을 디자인하며 이름을 알렸다. 인천국제공항 공공디자인, 서울시 치매전담실 서비스디자인 등을 통해 2019년 제21회 대한민국디자인대상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고객을 고려한 서비스 환경을 개선해 온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초고령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하고자 ‘늙어도 괜찮아 디자인 연구소’를 만들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연구 및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www.cyph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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