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인지건강을 돕는 일상 디자인 지침서, 해크 케어
작성일:
2023-04-17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939

[기획] 인지건강을 돕는 디자인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0호(2023. 05)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지건강을 돕는 일상 디자인 지침서 

해크 케어 


싱가포르의 자선단체 리엔재단과 건축스튜디오 레케아키텍츠가 발표한 ‘해크 케어(HACK CARE)’는 인지기능 장애 환자를 위한 집안 환경 개선 노하우를 담은 온라인 무료 카탈로그다. 스웨덴의 글로벌 가구 기업 이케아의 제품을 변형하거나 새로운 요소들을 간단히 조립해 인지기능 장애 환자용 가구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덕분에 이러한 지침이 강제적인 규제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개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넛지 효과처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따르게 되는 행동 디자인에 가깝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리엔재단, 그리고 이를 수행한 레케아키텍츠에게 싱가포르 인지기능 장애 인구의 다양한 요구와 물리적·사회적 환경 개선을 위해 시도한 노력에 대해 물었다. 


해크 케어는 이케아 카달로그를 모사해 누구에게나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간다.해크 케어는 이케아 카달로그를 모사해 누구에게나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간다. 사진 제공: 리엔재단



Interview 1

포 와 리엔재단 CEO(Poh Wah, CEO of Lien Foundation) 


“우리는 대중에게 좋은 디자인으로 선택권과 책임감, 삶의 목적과 성취감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리엔재단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진적인 접근법을 제안하는 싱가포르 기반의 자선단체입니다. 혁신적인 솔루션에 투자하고,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소집하며, 보건 및 사회 의료의 교차점에서 촉매 작용을 하고자 합니다. 그중 아동 발달, 노인 돌봄 등의 논의에 디자인 과정을 포함시키기 위해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 기술자들의 지성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해크 케어도 그중 하나이지요. 


싱가포르 사회에서 인지건강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요? 

의료기술과 과학만으로는 만성 질환, 우울증 및 사회적 고립으로 고통받는 고령화 인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가 직면한 핵심 과제는 고령화 인구의 다양한 요구를 물리적 및 사회적 환경에 어떻게 반영하고 지원할 것인가 입니다. 인지기능 장애와 같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 모델이 필요하죠. 우리는 환자, 간병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더 나은 솔루션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바꾸고, 경험을 의학화하고 또 인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도구이죠. 우리는 디자인을 제품, 서비스, 조직, 사회를 개선하는 혁신과 변화의 핵심 동인으로 봅니다. 이런 디자인을 잘 하기 위해서는 겸손함과 상상력을 겸비한 공감이 필수적입니다. 타인의 입장에 이입할 수 있어야 하죠. 


인지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 접근법이 궁금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용자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인지기능 장애가 있더라도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사람을 만나고(당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우 받고 싶어 합니다(당신이 원하는 방식의 대우가 아닙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제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인간은 매우 서로 다른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노인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60세에서 90세 사이의 모든 사람을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온 시간에 따라 서로 더 달라지는 게 사람이니까요.  


해크 케어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인지적, 신체적 한계와 싸우는 이들이 원하는 바를 그러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인지기능 장애를 겪으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아름다웠던 요소들이 장애물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수많은 논문이 이런 일상적 투쟁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지 안내합니다만, 여전히 이론과 현장 사이에 괴리감이 있습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지침들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공원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야 한다거나 가구 전체를 바꾼다거나 하는 말처럼요. 

맞습니다. 리엔재단이 레케아키테츠(Lekker Architects)와 산업디자인 스튜디오 란차베치아+와이(Lanzabecchia+Wai)에게 인지기능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가정과 삶을 손쉽게 개선하는 디자인을 해보자고 한 건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해크 케어는 인지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생활 속 아이디어를 모은 책으로 이케아의 ‘디자인 해킹’을 모사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디자인 민주화에 관한 시도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여러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DIY 리소스로 제공해 간병인이 직접 디자인 해킹*에 나서도록 영감을 주고 권한을 부여하죠. 그 덕분인지 발표 이후 환자 또는 보호자를 위해 가구 또는 일상용품을 해킹했거나 해킹할 계획을 공유해주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디자인 해킹이란 기성 제품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환경과 필요에 따라 기성 제품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개조해 쓰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특히 이케아 제품은 저렴하고 대중적이어서 디자인 해킹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이케아의 스테디셀러인 자작나무 합판 스툴 2개를 해체하고 재조립해 자전거를 만드는 디자인 프로젝트 '드레지엔(Draisienne)'이 대표적인 예다. -편집자 주

 

이케아 제품 카탈로그를 모사한 디자인 지침서.이케아 제품 카탈로그를 모사한 디자인 지침서. 사진 제공: 리엔재단


이렇듯 인지건강을 다룰 때 전문가들이 흔히 간과하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관료제에서는 통일성, 질서, 효율성을 중시합니다. 이에 다양성, 유연성, 창의성, 균형 등을 놓치는 경우가 자주 있죠. 리엔재단은 정신적, 사회적 건강이 신체적 건강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고요. 좋은 디자인은 이러한 건강, 관계, 의미를 더 크게 하는 장소를 만들고 기회를 엽니다. 우리는 노인에게 좋은 디자인으로 선택권, 책임감, 삶의 목적과 성취감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노인들의 삶을 고양시키고 응원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수동적인 보살핌의 대상이 아닌, 선택할 권한이 있는 주체로 대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행동을 적절하게 이끄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죠.


해크 케어 프로젝트 이후 진행한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나요?  

레케아키텍츠와 차세대 호스피스 데이센터 ‘오아시스@아웃람(Oasis@Outram)’, 포괄적 유치원 ‘킨들 가든(Kindle Garden)’, 디자인 주도 유치원 ‘캐터필러 코브(Caterpillar’s Cove)’를 진행했습니다. 체육관처럼 어르신들이 안전하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첨단 근력 훈련 시스템을 적용한 시설도 있습니다. 영상(클릭)으로 더 자세히 만나보세요. 조만간 싱가포르국립박물관 내에 노인 인지장애 친화적 사회 공간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거실, 주방, 침실 등 공간별로 자주 쓰는 가구, 제품 등에 필요한 지식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거실, 주방, 침실 등 공간별로 자주 쓰는 가구, 제품 등에 필요한 지식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사진 제공: 리엔재단, KHOOGJ

 

의자를 배치하는 노하우. ‘상호작용은 언제든지 환영할 일이나 돌봄 대상자를 압도하면 안 된다.  마주보기보다는 의자를 나란히 둬 정면 응시는 피하면서 친밀감을 만들어보라’고 권한다의자를 배치하는 노하우. ‘상호작용은 언제든지 환영할 일이나 돌봄 대상자를 압도하면 안 된다. 

마주보기보다는 의자를 나란히 둬 정면 응시는 피하면서 친밀감을 만들어보라’고 권한다. 사진 출처: 해크 케어


밋밋한 도마라도 몇 가지 하드웨어를 붙이면 소근육을 활용할 수 있는 핑거 보드로 변신한다.밋밋한 도마라도 몇 가지 하드웨어를 붙이면 소근육을 활용할 수 있는 핑거 보드로 변신한다. 사진 제공 : 리엔재단, KHOOGJ



Interview 2

옹 케르싱, 조슈아 코마로프 레케아키텍츠 대표(Oong Ker-Sing, Joshua Comaroff, Principal of Lekker Architects)


“우리는 자신의 삶, 사랑하는 인지기능 장애 환자의 삶을 개선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격려하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레케아키텍츠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고, 성장하고,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을 상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노화와 인지건강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구성원 소개를 드리자면, 건축가이자 교육자인 옹 케르싱(Oong Ker-Sing)은 싱가포르국립대학교 건축학부 부교수 겸 프로그램 디렉터이자 제빵사, 여행자, 그리고 건강 신봉자입니다. 조슈아 코마로프(Joshua Comaroff)는 싱가포르국립대학교에서 도시학 전공을 가르치는 디자이너입니다. 건축과 조경 디자인 교육을 받았고, 문화 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1990년대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디자인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만났고 25년간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해크 케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리엔재단의 제안에 동의했어요. 시중에서 인지건강을 위한 환경 디자인 지침을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추상적이고 실제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요?

기존의 많은 ‘솔루션’은 일상적 공간과 조건을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지건강을 위한 제품 대부분이 의료업계에서 시설용으로 만든 것이라 우리네 아파트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크거나 부피를 많이 차지해 부담스러웠습니다. 또한 간병인은 아직 필요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자녀이거나 반려자라 다양한 층위에서 전문 지식이 마련되어야 했고요. 따라서 해크 케어의 목표는 인지기능 장애를 겪는 이들의 독립성, 행복, 존엄성을 유지하며 인지적 쇠퇴를 늦출 수 있도록, 사랑하는 가족과 오랫동안 자신의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일반적 생활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표를 위해 꼭 지키고 싶었던 개념이 있다면요?

누구든 이 지침을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물리적 표준을 설정했습니다. 전문 간병인과 가족 보호자 모두와 해킹 방식을 테스트했고, 나오는 의견을 반영해 개선했죠. 이렇듯 연구와 실험 사이를 오가며 우리가 무의식 중에 하던 행동을 파악하고, 가구나 물건, 방의 배치를 통해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면서 노인의 움직임 및 참여 활동을 지원하는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행동을 유도한 것이군요. 프로젝트에 착수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가족 및 전문 간병인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인터뷰를 실시하여 스스로 또는 노인과의 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를 파악했습니다. 또한 글로벌 모범 사례와 이론을 연구하며 최신 정보를 수집했고요. 한 예로 리처드 플레밍(Richard Fleming)과 커스티 베넷(Kirsty Bennet)이 개발한 증거 기반의 "치매 가능 환경 원칙"을 참고해 미시적 규모에서 인지건강장애 관리의 표준이 될 수 있는 10가지 원칙을 찾았습니다.  


중증 인지장애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역할하도록 하자.

의사결정을 북돋우자.

자아 감각을 확인하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순한 편의를 제공하자.

익숙함은 위로가 된다.

간단한 즐거움을 잊지 말자. 

환경을 단순화하자.

같이 하자.

유연성과 융통성을 가지자.

간병인이 중요하다.

(해크 케어 프로젝트의 매니페스토이자 10가지 디자인 원칙, ‘해크 케어’ 6-7쪽 참고)

 

‘중증 인지기능 장애를 겪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역할하도록 하자’로 시작하는 매니페스토‘중증 인지기능 장애를 겪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역할하도록 하자’로 시작하는 매니페스토. 사진 제공: 리엔재단, KHOOGJ


이케아 카탈로그 디자인을 빌리고, 또 책을 온라인으로 무료 배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프로젝트는 브랜드 이케아와 관련 없는 결과물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접근성, 경제성, 편리성이 꽤 유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DIY 정신에서 영감을 얻은 부분도 있고요. 인지기능은 독특한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각자에게 고유한 증상으로 일부에게는 잘 작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해킹'은 문제해결 방법으로 적합했습니다. 문제가 지속적으로 변하는 질병 및 치료 상태에도 적용하기 적절하고요. 우리는 이 내용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닿으면 좋을 것 같아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이 책은 hackcare.org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연구 기간을 포함해 출판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3년 이상 걸렸습니다. 해크 케어의 핵심은 보호자 또는 간병인이 디자이너처럼 생각하고 자극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임상 지식을 '마이크로 월드'(물리적 환경)와 '일상적 리추얼'이라는 간단한 주제로 재구성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여기에는 해킹된 프로토타입, 기존 이케아 사물에 대한 새로운 사용, 관리 원칙을 보여주는 그래픽 등 다양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료 전문가 및 보호자와의 인터뷰를 공유해 간병의 인간적인 측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종합적으로 이 책은 의학, 기술, 신체뿐 아니라 정서적 인지건강의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창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지건강을 위한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목표가 계속 움직이고 반드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이 때문에 설계가 매우 어렵지요. 


인지건강과 관련해 진행한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리앤재단과 함께 한 오아시스@아웃람은 환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호스피스 관리 모델을 제안합니다. 삶을 긍정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편안한 색상과 천연 소재의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을 자극하며, 상황별로 다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환자의 활동과 선택을 어떻게 하면 유연하게 수용하고 삶을 축하할 수 있을지를 오래 고민했습니다. 


오아시스@아웃람은 다양한 프로그램 체험 존을 구성한 호스피스다. 휠체어 그네, 게임 룸, 바 등 현대 문화 시설을 촘촘히 구성한 점이 눈길을 끈다. 오아시스@아웃람은 다양한 프로그램 체험 존을 구성한 호스피스다. 휠체어 그네, 게임 룸, 바 등 현대 문화 시설을 촘촘히 구성한 점이 눈길을 끈다. 

사진 제공 : 리엔재단, 레케아키텍츠, HCA호스피스



글: 윤솔희, 담당: 박은영

빠른 이동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