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사용자의 눈높이를 맞춘 해외 공간 유형별 안내체계
작성일:
2023-06-01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1213

[기획] 정보 표기 체계 안내서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1호(202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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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눈높이를 맞춘 

해외 공간 유형별 안내체계


문화적・사회적 배경, 나이, 신체 능력, 하물며 같은 단어라도 이해하는 폭이 다르다. 바로 우리 사이를 이르는 말이다. 한 도시, 같은 공간에 살아도 새로운 정보를 받아 들이는 그 순간 만큼은 다른 세계에 있는 듯 서로 낯설 때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잘 소통하고 더 안전하기 위해서는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안내체계가 잘 갖춰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공항, 역사, 미술관, 경기장 등 수백 명의 사용자가 교차하는 공간의 정보 안내체계 사례를 모아 소개한다. 



[공항]

런던, 히드로 공항(Heathrow Airport)

영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번잡한 공항이라 손꼽히는 곳이 바로 히드로 공항이다. 연간 약 8천만 명이 오가는 장소로, 정보 디자인 스튜디오 어플라이드(Applied)는 “상당수의 승객이 시간 압박과 정보 불확실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히드로 공항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매핑 방식을 이미 가지고 있으나 공항 경험이 부족한 이들을 위한 정보 특화 설계는 사실 없었다. 이에 허브 맵(Hub Map) 프로젝트로 오늘날 디지털 웹 환경에 맞춰 표준 형식을 통합하고 접근성을 개선하는 일을 추진했다”고 프로젝트 배경을 설명한다.

어플라이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정보체계를 ‘따로 또 같이’ 표현하는 방식을 구현했다. 종합안내사인 역할도 디지털 키오스크가 맡는 만큼 허브 맵(Hub map)이라 부르는 원천 데이터를 만들고 그것을 모바일 기기, 웹사이트, 종이 브로슈어와 리플릿, 디지털 키오스크에 송신해 쓰는 전략을 짰다. 이로써 훗날 공간 정보가 바뀌더라도 허브 맵 지도만 업데이트하면 된다. 디지털 맵은 검정 바탕으로, 출력물은 하얀 바탕으로 구분했고 현 위치를 실시간 알려주는 매핑 기능을 삽입해 공항 내에서 자신의 위치와 상점가, 게이트 정보를 즉시 알 수 있도록 했다.

  

히드로 공항은 웹 환경에 초점을 맞춘 안내체계 디자인을 선보인다.

히드로 공항은 웹 환경에 초점을 맞춘 안내체계 디자인을 선보인다. 사진 출처: 어플라이드


뉴욕, 모이니한 기차역(Moynihan Train Hall)

회색 철골조와 그를 감싼 유리 천창이 돋보이는 모이니한 기차역은 2021년 1월 1일에 개관했다. 뉴욕의 주요 시외 및 통근 철도역인 펜 역(Penn Station)의 바로 앞 건물로 펜 역을 이전하면서 규모를 확장한 것인데 건축적으로는 1914년 지어진 뉴욕의 중앙 우체국을 리모델링해 화제를 모았다. 펜 역과 2개의 지하철 노선 등을 포함하고 쇼핑센터 및 편의시설 역할까지 아우르니 이들이 보행자에게 알려야 할 정보 역시 많았다. 안내체계 디자인을 맡은 미세나르(Mijksenaar)는 “교통수단도 다양하고 보행자가 원하는 정보도 다르다. 이에 펜 역의 기존 정보 안내체계 시스템에서 디자인을 출발하되 광역적 레벨에서 국소적 레벨로 정보의 위계를 설정하며 구조화했다. 통근자, 방문자, 소비자가 궁금해 할 법한 질문을 실외부터 실내까지, 실내에서 실외까지 매끄럽게 배치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기차 정보를 노란색, 지하철 정보를 연한 남색으로 표시해 인지성을 높였고 지주형 안내판을 줄이고 기둥에 디지털 보드를 매립해 인테리어적으로 완성도 높은 미감을 구현했다.


모이니한 기차역은 보행자가 고개를 들면 어디에서나 안내판이 보이도록 설치했다

모이니한 기차역은 보행자가 고개를 들면 어디에서나 안내판이 보이도록 설치했다. 사진 출처: 미세나르


[미술관]

달링허스트, 호주 박물관(Australian Museum)

“병원이나 지하철역사와 같이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공간과 박물관은 안내체계 디자인 접근법이 다르다. 전자의 경우 빠르고 신속하게 목적지로 향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우리의 정보체계 디자인은 직관적으로 정보를 주며 박물관 관람객이 자신의 속도로 다양한 공간에 들려 새로운 발견을 하길 바란다.” 디자인 스튜디오 엔트로(Entro) 대표 얀 애쉬다운(Jan Ashdown)은 <어반 디벨로퍼>에서 호주 박물관 정보 안내체계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즉 엔트로는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길에 보행자가 서두르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여정을 완성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면서도 박물관만의 감성이나 분위기를 녹여내는 것 또한 중요했다. 이에 안내체계는 흔히 적용하는 최신 디지털 보드 대신 호주의 고유 수목인 블랙버트로 제작했으며 점자 정보 등을 상세히 넣으며 포괄적인 디자인에 다가섰다. 전시실 리노베이션과 함께 진행된 사업이기에 난간은 전면 교체하고 계단실 벽면에 큰 로고타입으로 해당 층 정보를 설치했다. 

 

호주 박물관은 안내판 자재로 지역의 특색을 드러낼 수 있는 목재를 사용해 안내체계에 이야기를 더했다.

주 박물관은 안내판 자재로 지역의 특색을 드러낼 수 있는 목재를 사용해 안내체계에 이야기를 더했다. 사진 출처: 엔트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광장을 리뉴얼하며 안내체계도 개편한 사례다. 대상지가 야외공간인 만큼 디자인 스튜디오 엔트로는 광장 리뉴얼의 랜드스케이프 건축가인 OLIN과 협업해 최대한 건물이 가진 분위기와 지역 환경에 녹아 들도록 콘셉트를 설정했다. 흑색의 금속 보드를 2개 겹쳐 제작한 지주형 안내판으로 3개의 블록을 쌓은 듯한 모습이 특징이다. 가장 상단의 첫 번째 칸에 장소 이름 정보를, 두 번째 칸에 방향 정보 또는 장소의 상세 정보를, 가장 하단의 세 번째 칸에 이용 안내 정보를 담아 체계적으로 정보를 그룹핑한 모습이다. 

 

보행자의 눈에 띄도록 건물 입구 높이와 같거나 난간보다 약간 높게 배치했다

보행자의 눈에 띄도록 건물 입구 높이와 같거나 난간보다 약간 높게 배치했다. 사진 출처: 엔트로


[경기장]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Tottenham Hotspur Stadium)

콘서트, 컨퍼런스, 스포츠 경기 등이 일어나는 스타디움의 경우 프로그램에 따라 진출입구 등 관람객 이용 동선이 바뀔 수 있고 대규모의 인원이 일시에 군집하고 이동하는 특징이 있다. 통합적인 규칙과 직관적인 디자인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이에 안내체계 디자인을 맡은 파풀로스(Populous)는 지하철 역사 근처에 설치하는 종합안내사인의 경우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날로그화 하되, 실내에 설치하는 안내판은 디지털 LED 스크린을 선택했다. 프로그램마다 달라지는 이용 정보를 즉각적으로 송신하기 위해서다. 특히 실내의 경우 안내판이 보행 동선에서 바로 보일 때 벽면에 붙어 있을 때보다 군중 흐름이 빠르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했다. 이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이먼 보그(Simon Borg)는 “사람의  키보다 높은 곳에 안내판을 설치해 관람객이 밀집해도 어느 곳에서나 잘 보이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안내판은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전선 케이블 모습을 가리는 역할도 한다. 설계 단계부터 건축가와 정보 안내체계 디자인팀이 긴밀히 협업한 결과다. 흰색과 남색은 토트넘 훗스퍼의 대표 색에서 차용했다.


실내에는 디지털 스크린을, 실외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스크린을 함께 배치했다.

실내에는 디지털 스크린을, 실외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스크린을 함께 배치했다. 사진 출처: 파풀로스


애틀랜타,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Mercedes-Benzes Stadium)

슈퍼볼, FIFA 경기가 열릴 수 있는 규모의 경기장을 짓겠다는 목표로 건설된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은 2017년 문을 열었다. 기업의 상징처럼 역할할 수 있는 규모와 용도의 공간이기에 정보 안내체계 디자인도 인테리어적 관점에서 브랜드 컬러를 적극 반영해 일체감을 구현한 모습이다. 스타디움 내 붉은 좌석처럼 안내판도 주 색은 붉은색이며 흰 글씨로만 정보를 썼다. 픽토그램, 화살표, 숫자, 공간 정보만 단순하게 기입한 점도 깔끔한 인상에 기여한다. 정보 안내체계 디자인은 L&H사인컴퍼니(L&H Sign Company)가 맡아 진행했다. 

   

안내 정보를 픽토그램, 숫자, 화살표 등만을 활용해 간결하게 드러냈다.

안내 정보를 픽토그램, 숫자, 화살표 등만을 활용해 간결하게 드러냈다. 사진 출처: L&H사인컴퍼니  


[더하기. 도시 브랜딩의 수단이 된 안내체계]

체계적으로 조직된 정보, 심미적 디자인은 도시 브랜딩에도 크게 기여한다. 런던, 뉴욕, 도쿄 등은 일찍이 도시의 정보 안내체계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사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는 세계 디자이너의 이목을 모으기에 충분하고 시민에게 도시의 긍정적 경험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런던, 레지블 런던(legible london)

2007년 런던에 구축된 보행자 길찾기 시스템 레지블 런던은 효과적인 정보 안내체계 디자인으로 늘 손꼽히는 사례 중 하나다. 과거 안내표지 시스템이 도심 지역에만 32종이나 있었을 정도로 체계가 없었던 것을 19개의 안내판으로 정립한 일이다. 그토록 종류가 많았던 이유는 행정기관마다 다른 안내판을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행정 기관 중심이 아니라 사용자 중심으로 시점을 돌리는 것이었다. 

런던 교통청이 외부 기관에 맡겨 진행한 사후 조사 결과 안내체계를 개편한 것만으로도 조사 대상자 중 85%가 만족도를 보였고 자기 위치가 확인이 가능하다고 한 응답자의 62%는 “레지블 런던 시스템 덕분에 평소보다 더 걷고 싶어졌다”고 응답했다. 이 결과 뉴욕, 벤쿠버, 토론토 등도 정보 안내체계 디자인에 나선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방향 안내, 광역지도, 상세 지도 등을 삽입한 자립형 도로 종합안내판이다.

방향 안내, 광역지도, 상세 지도 등을 삽입한 자립형 도로 종합안내판이다. 사진 출처: 어플라이드


뉴욕, 워킹뉴욕(WalkNYC)

“오랜 주민인 뉴요커도 뉴욕 거리에서 길을 헤맬 수 있다.” 팬타그램(Pentagram)이 디자인한 워킹뉴욕의 소개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혼잡통행료 징수”까지 검토하는 뉴욕이기에 그 명성은 따져 묻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펜타그램은 교통국과 협력해 대중교통을 장려하는 바람까지 반영한 정보 안내체계를 만들었다.

교차로, 광장, 거리 초입 등지에 배치된 안내판은 도보로 5분 내에 갈 수 있는 범위의 건물, 장소, 도로 이름을 매핑해 알려준다. 버스정류장, 지하철역사 같은 정보는 물론 랜드마크의 경우 아이콘을 삽입하고 이름도 기입했다. 지도는 투명 비닐로 인쇄해 부착한 것으로 추후 수정 시 떼어내 새것으로 교체 가능하도록 운영자를 배려했다. 안내체계에 대한 그래픽 아이덴티티도 더해 이 자체로 도시를 브랜딩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뉴욕의 경우 정보 안내체계 디자인을 넘어 ‘워킹뉴욕’ 브랜드 아이덴티티까지 만들었다.

뉴욕의 경우 정보 안내체계 디자인을 넘어 ‘워킹뉴욕’ 브랜드 아이덴티티까지 만들었다. 사진 출처: 팬타그램


마드리드, 리어 마드리드(Leer Madrid)

2017년부터 시작된 리어 마드리드 프로젝트는 어플라이드에서 추진하는 안내체계 디자인 개선 사업 중 하나다. 먼저 설문조사를 통해 마드리드 보행자가 겪고 있는 문제를 도출하고 어떻게 길을 인지하고 걷는지를 파악하는 멘탈 지도를 그리며 문제에 접근하는 점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일주일에 32% 방문객이 길을 잃고, 이때마다 보행자는 주변을 탐색하거나 기존의 안내체계를 활용하는 대신 안내센터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어플라이드가 주목하고 있는 점이다. 결과물이 될 마스터 플랜에서는 디자인 원칙과 비전, 픽토그램과 기호, 정보체계 디자인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어플라이드는 여러 도시에서 이미 안내체계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한 기업이지만 도시마다 가진 문제가 고유하기에 ‘저곳의 솔루션을 이곳에 입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각 도시의 문제와 현황 도출하기를 가장 중요한 디자인 과정으로 여긴다.

 

어플라이드는 사용자 설문조사 분석과 보행자의 행태 분석을 면밀히 한 다음 디자인해야 자생력이 있는 안내체계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플라이드는 사용자 설문조사 분석과 보행자의 행태 분석을 면밀히 한 다음 디자인해야 자생력이 있는 안내체계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 출처: 어플라이드

글: 윤솔희, 담당: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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