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작성일:
- 2024-05-30
- 작성자:
- 문한아
- 조회수:
- 2033
[기획] 디지털이 모두의 편의가 되려면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43호(202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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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디지털 기술을 만들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시각장애인 부부의 육아 이야기
작년에 자녀를 기르고 있는 한 전맹* 시각장애인 부부를 만났다. 잠깐, 전맹 시각장애인 부부인데 어떻게 아이를 기를 수 있지? 비장애인 부모라면 상상이 잘 안 갈 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려면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열을 체크하고, 공부를 가르치는 등 정말 수없이 많은 일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정 부분은 활동 보조인이 보조를 했지만 주말이나 저녁 육아는 온전하게 이들의 몫이었다.
*전맹 : 시력이 0으로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시각장애
이들이 유용하게 사용한 것은 음성 체온계였다. 보통 체온계는 음성으로 체온을 알려주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체온을 숫자로만 표시한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에게 정보를 청각으로 알려주는 도구는 상당히 유용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밥을 떠먹이고, 울면 달려가 달래기도 하며 온 몸으로 길러낸 이 아이들은 지금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런 이들이 한 가지 아쉬워한 것은 교육과 관련된 것이었다. 아이가 자라면 호기심도 불쑥 자란다. 뭐든 물어본다. “이건 뭐야?”, “이건 왜 이래?” 그때마다 이들은 안타까웠다.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이를 가진 뒤 약 15년이 지난 지금이라면 ‘설리번 플러스’나 ‘Seeing AI’ 같은 광학 문자 인식(OCR)* 기능이 탑재된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미지를 촬영해 인식하고, 더 자세한 정보를 ChatGPT에게 물어봤을지도 모르겠다. 요새 ChatGPT 보이스 모듈은 음성 소통도 가능하니 “이 공룡의 이름과 특징을 설명해줘” 이렇게 활용하지 않았을까?
*광학 문자 인식(OCR) : 영상에 포함된 문자를 빛을 이용하여 판독하고 변환하는 장치

시각에 보조가 필요한 사용자들에게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인식한 정보를 음성 등으로 알려주는 ‘설리번 플러스’ㅣ출처: 설리번 플러스 https://www.mysullivan.org/
‘독립성’과 ‘정신 모형Mental Model’
디지털 기술이 일상의 편의를 넘어 사용하지 않고는 불편을 겪을 만큼 보편화된 이때, 포용적 디지털 기술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원리가 있다. 첫 번째는 사용자의 ‘독립성’이다. 누구나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행동하고 싶어 한다. 앞서 예시로 든 시각장애인 부부의 사례에서 이들이 부모로서 어떤 지점이 가장 답답했을까? “내 자녀는 내가 기르고 싶다”라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하고 싶은 그 마음을 부모라면 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용자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은 ‘모두를 위한 기술’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사용자의 독립성은 특히 공공의 모든 서비스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버스나 지하철 같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이용하는 공공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매번 도움을 받거나 눈치를 봐야 한다면,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정신 모형*’이다. 즉 누구나 자신의 행동과 행동에 따른 이후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초고령화 사회, ‘모두’의 대상에서 우리는 고연령층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전 시대의 기계와 아날로그 기기에는 탐색 기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전화기,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기기들은 버튼이 모두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고, 따라서 직접적으로 버튼을 누르거나 손잡이를 돌리는 등 단순한 동작으로 원하는 채널과 주파수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런 그들이 탐색 기능이 강화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려면, 이전에 경험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체계의 인터페이스에 적응해야만 한다. 심지어 고연령 저소득층은 스마트폰이 없거나 집에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어 디지털 중심의 사회적 연결망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디지털 소외는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정신모형 :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마음의 표상

출처 : Adobe Stock
공공이라는 책임과 ‘퍼스트 터치First Touch’
필자가 발행하는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의 <도서관 : 포용적 도서관의 요소들> 제작을 위해 여러 인터뷰를 진행하며 공공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특수 학급을 지도하고 계신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이 지역 사회에서 아무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몇 개나 될까요? 공공도서관은 아이들이 언제든 찾아가 기댈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조언을 주셨다. 공공성을 지닌 공간이란 곧 모든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지닌 공간이자, 모두에게 열린 ‘환대’하는 공간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누구든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환대’는 첫 시작에서 강하게 전달된다. 그래서 처음 맞닥뜨리는 접점이 매우 중요하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출입구, 온라인 공간에서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첫 페이지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키오스크와 같은 물리적 접점이나, 모바일에 구현된 디지털 기술과 디자인은 첫 접점으로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나는 이것을 경험의 ‘퍼스트 터치 효과First Touch Effect’라 부른다. 이 첫 접점의 경험이 디지털 소외 계층의 사회 참여 의지를 좌지우지한다.

디지털 기반 사회에서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은 시각장애인에게 공공 또는 기업 브랜드를 만나는 첫 접점이다. 이 접점은 시각장애인들의 지속적 사회 참여 의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ㅣ출처 :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1 <이동>
어떻게 ‘모두’를 위할 것인가?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은 “모두를 위한 경험”을 의미한다. 행정 서비스, 대중 교통, 교육, 문화예술, 응급 상황 신고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경험이 누구에게나 제공되고, 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이것이 포용의 힘이다.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사회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 진다면 편견의 시선도 사라질 것이다. 나아가 어떠한 신체적, 정신적, 혹은 경제적 차이와 관계 없이 온전하게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된다. 한 번 생각해보자. 내가 장애인 혹은 보행 보조기를 사용하는 80세 이상의 사람이라면, 전시를 예매하고 집 밖을 나와 미술관에 도착해 전시를 감상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이 어떠할까? 만약 그 과정에 아무런 제약이 없고, 또한 누구나 밝은 얼굴로 나를 대한다면 밖으로 나가길 주저하겠는가?

휠체어 이용자, 시각 장애인, 고연령층 등 사회적 약자의 경험을 고려한 디자인은 임산부나 양손에 물건을 든 사람,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 등 일시적으로나마 활동에 제약이 있는 모두의 경험에도 긍정적이다ㅣ출처 :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1 <이동>
포용적 기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정 중심의 노력이 필요하다.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소외되었던 디지털 취약 계층 사용자를 ‘상상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직접 ‘참여하여’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포용적 기술의 진정한 실현은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가운데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이것이 공공에서도 사용자 중심 디자인 또는 사용자 중심 기술을 구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부담 없이 경험하세요”
글 : 김병수((주)미션잇 대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https://missionit.co/
편집 :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