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무엇이 집을 변화시키는가
작성일:
2024-07-02
작성자:
문한아
조회수:
389

[기획] 변화하는 사회의 '삶'과 '집'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44호(202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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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집을 변화시키는가

 

과거에는 ‘주택House’이라고 하면 양옥집, 아파트처럼 주소지를 두고 있는 물리적 공간을 떠올렸지만, 요즘의 주택은 한 가지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자유롭게 살 곳을 옮겨 다닐 수 있고, 특히 모빌리티가 발달하면서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은 공간도 주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이 ‘삶Living’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비로소 주거의 의미를 갖는 ‘집Home’이 된다. 한편 최근 학계에서 취약 계층의 주거를 다룰 때는 ‘거처Shelter’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일상을 안전하게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주택의 기본적인 기능에 미치지 못하는 주거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연세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김석경 교수는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공공디자인 분야가 물리적 공간인 ‘주택’에서 나아가 사람들의 삶을 함께 살피는 ‘주거’를 다룬다는 것이 무척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현실의 삶과 집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를 주고받고 있을까? 또 새로운 대상에 맞닥뜨린 공공디자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거주자 유형의 등장

이제는 더이상 ‘핵가족’이 거주자 유형을 대표하지 않는다. 1인 청년 또는 노인가구, (아이가 있거나 없는)신혼부부, 노부부, 친구, 동료 등 다양한 특성과 형태의 구성원이 등장하고 있다. 이 중 국가의 주거 정책 타깃 변화에 비춰 주목할 만한 유형을 꼽자면 1인가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공식 통계에 잡힌 1인 가구 수* 외에도, 부모의 집에서 주민등록 주소를 옮기지 않고 독립해 살고 있는 학생들이나 취업준비생 등을 합하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할 거라고 본다. 노년 가구의 주거를 누구나 자연스럽게 겪게 될 시기의 복지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1인가구는 그 유형과 전망 등에 있어 비교적 더 세분화된 주거 분석이 필요한 대상이다.

*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인가구의 비율은 34.5%로, 750만 2,350가구다. 이는 4인 가구 수의 약 2배에 이르는 숫자다.(2022인구총조사, 통계청)

 

1인가구 증가의 부정적 경과는 이들이 시간이 지나도 신혼부부 가구로 전환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회의 저출산 문제와도 상통한다. 그러나 저출산에 대한 문제 인식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족보다 1인 청년가구에서 훨씬 높게 나타난다. 다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다. 1인 청년가구가 충분히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보상적 주거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세대는 가까운 미래에 걸쳐 우리나라에 특징적으로 나타날 노인 주거 문화의 중심이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다르게 평균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오랜 사회 생활을 경험했으며, 노후에 대한 경제적 대안을 가지고 있다. 노년기에 접어든 베이비 부머는 이전 세대가 주택 규모를 줄이고 소비를 줄이던 것과 반대로 양질의 주거 서비스와 편의를 요구하고 소비한다. 시니어 주택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헬스케어 시스템이나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되는 커뮤니티 시설 디자인 등의 변화가 이로 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출생률이 특히 높았던 시기에 태어난 세대. 우리나라의 경우 6.25 전쟁이 끝난 1955년부터 1963년에 걸쳐 태어난 세대를 이른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거 복지

공공디자인 측면에서는 중산층 이하, 특히 취약 계층의 주거를 중요하게 다룰 수 있다. 민간 중심으로 브랜드화 되어 확산 중인 일부의 주거와는 다른 이야기다. 중산층에 있어서는 살던 집에서 노년을 계속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 집에서 나이들기Aging in Place(AIP)’ 개념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분양될 모든 아파트를 다 노인 주택처럼 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보행 보조기가 다닐 수 있는 폭을 확보하고, 인지가 쉬운 색채 사용, 단차를 없애는 등 주택에 적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지금의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필요한 시기가 온다는 의미에서다.

 

취약 계층의 거처는 더욱 더 주거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대상이다. 집이 기능적으로 더위와 추위, 자연재해, 습기, 냄새 등을 막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속 가능하게는 취약 계층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이를 지원하는 복지 시스템에 단절된 부분들이 있어 안타깝다. 공공임대주택을 제공 받아 이사를 가려고 해도 이삿짐을 정리할 여력이 없거나, 이삿짐 센터를 이용하는 것, 지역구를 넘나들어야 하는 각종 행정 처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거다. 이처럼 취약 계층의 주거 복지는 일련의 과정 전반에 걸친 세밀한 서비스가 필요하다.

 

기술이 이끄는 주거의 질적 향상

디지털 기술이야 말로 지금의 주거 공간에 큰 변화를 만든 주요한 요인이다. 주거에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홈’ 분야는 공공 영역에서도 토지주택연구원 등을 통해 1990년대부터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당시 국토부와 정통부가 협력해 공공 아파트에 인터넷 라인을 보급하며 효율적 확산을 도왔고, 비디오 인터폰부터 시작했던 스마트 시스템은 약 20년만에 공공주택에도 일체형으로 제공되기 시작했다. 스마트 시스템의 도입은 주거 안전과도 연관이 깊다. 범죄 예방과 헬스케어는 물론, 창이 없어도 환기를 할 수 있고 집 앞에 쌓인 눈을 열선으로 녹이는 등 많은 기술 장치들이 주거 편의 뿐만 아니라 안전한 삶을 지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거 분야에서 취약 계층을 위한 자율주행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대중교통 사용이 어려운 지역에 살거나, 자동차가 없거나 운전을 할 수 없는 저소득층, 고령층의 이동권을 자율주행으로 보장하겠다는 새로운 의도의 접근이다. 기술은 삶에 기본적인 편의와 안전을 위해 쓰여야 하고, 또 보편화 되는 만큼 그것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을 향해야 이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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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쟁 직후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의 주거 안정을 위해 많은 세대를 수용할 아파트를 빠르게 공급하며 주택이 일정한 평면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공 청년주택의 경우에도 원룸형, 거실 분리형, 거실 확장형 등 수요에 따라 평면이 다양화 되는 추세다. 생애주기별로 평면을 바꿔가며 살 수 있는 가변형 구조가 주목받기도 한다. 사실 가변형 평면, 친환경 건축, AIP, 스마트 홈 등 오늘날 주거에 등장하는 많은 개념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국내외에서 연구되어 온 결과가 적당한 시대를 만나 더 확장되고 견고해 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바뀌면 공간은 변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거주자의 생활 양식이 집을 바꾸기도 하지만, 집이 다시 그 생활 양식을 바꿀 수도 있다. 주거의 양적 성장에 이어 삶의 질과 직결된 주거의 질적 성장에 집중할 때다.


 

인터뷰이 : 김석경(연세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

연세대학교와 텍사스A&M대학교에서 주거환경 및 건축을 공부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와 미시건 주립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장, 실내건축학과 교수로 있다. 주거 환경 행태와 거주 후 평가, 주거 공간 계획, 취약 계층의 주거 등을 연구한다.

 

취재· :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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