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 기법을 도입한 국립민속박물관
작성일:
2021-04-26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5244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 기법을 도입한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 6호 (2021.5)


 

모두를 위한 전시

 

전시 관람은 시각이 중시되기에 시각장애인에게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 역시 시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장치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기획된 전시나 일부 특별전에서만 적용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상황 속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의 시도는 작지만 큰 발걸음을 남긴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12년 만에 개편한 상설 전시에 시각장애인과 약시자를 고려한 전시 기법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전시 <한국인의 일 년> 전시 전경 – 여름

전시 <한국인의 일 년> 전시 전경 – 여름 | 자료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지난 3월 20일에 개관한 <한국인의 일 년>은 조상들의 생활과 세시풍속을 4계절로 나누어 살펴보는 전시로, 오랜만의 개편에 맞춰 전시 디자인도 현대적으로 새롭게 바꿨다. 영상, 그래픽, 모형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고 현장감을 살린 전시 연출로 몰입도를 높였다. 그리고 모두가 즐겁고 편안한 전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그동안 고려하지 않았던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치 – 점자패널, 촉지도, 촉각 전시물을 곳곳에 설치했다.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 설치된 점자 패널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 설치된 점자 패널 | 자료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전시 주제와 내용을 알려주는 점자패널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패널은 전시 주제와 내용을 설명해 주는 장치로, 전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때문에 각 박물관과 미술관은 자국어와 외국어(주로 영어)가 함께 기재된 패널을 제공한다. 외국 관광객의 방문이 많은 국립민속박물관 역시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 총 4개 국어로 제작된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는 빠진 상태였다. 전시 <한국인의 일 년>은 점자패널을 추가하여 시각장애인에게 전시 주제와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각 부의 시작점에도 점자패널을 설치하여 전시를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 공간 내 위치를 알려주는 촉지도

 

전시 관람에서 공간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관람객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고, 어떻게 따라가고 있는지를 알면 전시 경험은 더 극대화된다. <한국인의 일 년>의 전시 디자인을 맡은 유민지 학예연구사는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 관람객처럼 공간적 경험을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점자패널 옆에 촉지도(점자 전시 배치도)를 함께 설치했다. <한국인의 일 년>은 4계절이라는 시간 순서에 따라 구성된 전시이기 때문에 공간의 흐름이 중요하다. 때문에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촉지도는 점자패널과 함께 시각장애인의 전시 이해도를 높여준다. 그리고 일반 관람객도 촉지도를 통해 현재 위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비장애인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 설치된 촉각 전시물1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 설치된 촉각 전시물2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 설치된 촉각 전시물 | 자료제공: 국립민속박물관

 

만져서 유물을 볼 수 있는 촉각 전시물

 

<한국인의 일 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시 기법은 바로 촉각 전시물이다. 고써레, 키 등 전시 유물을 그대로 본떠서 3D 프린트로 만든 촉각 전시물은 시각장애인이 전시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유민지 학예연구사는 촉각으로 많은 정보를 얻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전시물의 재질에도 신경을 썼다. 나무와 금속 등 유물에 사용된 소재를 전시물에도 적용하고, 깎긴 형태가 중요한 유물인 경우에는 실제 손으로 깎아서 제작했다. 그리고 유물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촉각 전시물 바로 옆에 점자 설명을 배치했다.

 

촉각 전시물은 시각장애자를 위해 마련된 전시 기법이지만 비장애인 관람객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유물을 실제로 만져보고 싶어 하는 어린이 관람객에게는 좋은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 비치된 빅레이블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 비치된 빅레이블 | 자료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약시자를 위한 빅레이블

 

<한국인의 일 년>은 시각장애인에서 더 나아가 약시자까지 고려했다. 전시 시작점에 설치된 패널에 약시자를 위한 빅레이블(글씨가 큰 전시해설 책차)을 함께 비치한 것이다. 주요 전시품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크게 인쇄된 빅레이블은 약시자 외에도 노인 관람객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서는 색 번호로 유물과 캡션1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서는 색 번호로 유물과 캡션2

전시 <한국인의 일 년>에서는 색 번호로 유물과 캡션을 한눈에 찾을 수 있다. | 자료제공: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인의 일 년>의 섬세한 배려는 진열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수와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전시되는 박물관에서는 전시품과 캡션의 직관적인 연결이 중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전시 디자인을 헤치지 말아야 하는데 이 절충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전시 <한국인의 일 년>은 이 까다로운 문제를 색과 번호로 해결했다. 유물 옆에 각기 다른 색의 번호표를 놓고, 동일한 색의 번호를 캡션에 기재함으로써 빠른 인지가 어려운 약시자와 노인 관람객이 유물의 이름과 정보를 한눈에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파도 영상과 소리를 통해 실제감을 높인 ‘바다’ 연출 공간

파도 영상과 소리를 통해 실제감을 높인 ‘바다’ 연출 공간 | 자료제공: 국립민속박물관

 

몰입감이 높은 전시 연출

 

<한국인의 일 년>처럼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민속 전시는 현장감이 중요하다. 전시된 유물이 실제로 언제,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여주면 더 빨리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일 년>은 영상과 오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봄의 새소리, 여름 장마철의 빗소리, 가을 추수를 하는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 겨울의 바람 소리 등 계절을 시각과 청각으로 표현하거나, 실제로 배를 전시한 공간에서는 파도 영상과 소리로 바다를 구현했다. 현장감을 살린 영상과 소리 효과는 시각장애인에게 청각을 통한 정보를 전달하고, 비장애인 관람객에게는 몰입된 전시 경험을 선사한다.

 

유물 바로 앞에 촉각 전시물을 설치함으로써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함께 유물을 감상 할 수 있도록 했다.

유물 바로 앞에 촉각 전시물을 설치함으로써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함께 유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자료제공: 국립민속박물관

 

능동적이고 평등한 전시 관람

 

<한국인의 일 년>은 음성해설에만 의존하여 수동적이었던 시각장애인의 전시 경험을 능동적인 경험으로 바꿨다. 이는 점자패널, 촉각 전시물 등 촉각에 중점을 둔 전시 기법을 도입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민지 학예연구사는 “평등한 전시 관람을 위해서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관람객이 동일한 위치에서 전시를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라, <한국인의 일 년>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든 전시 설치물이 비장애인 관람객의 동선과 동일한 곳에 설치되어 있다. 문자패널 바로 아래에 점자패널과 촉지도를 두었고, 촉각 전시물도 그에 해당하는 유물 바로 앞에 두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전시 기법

 

시각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전시 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유민지 학예연구사는 신중을 기했다. 개관 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취재를 왔는데 다행히 만족스러워했다고. 특히 촉각 전시물에 대한 평이 좋았다.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말해 주셔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작은 시도였지만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자로 된 전시 해설 책자를 배치하거나, 촉각 전시물의 수와 종류를 늘리는 등 유민지 학예연구사는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반응이 좋은 덕분에 국립민속박물관 내 다른 상설전시장을 개편할 때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법을 더 많이 도입할 수 있을 거라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보였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재, 그동안 소외했던 장애인에 대한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변화는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하나, 하나 천천히 바꿔 나간다면 곧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편리하고 즐겁게 전시 관람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글: 디자인프레스

취재협조 및 자료제공: 국립민속박물관(www.nfm.go.kr), 유민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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