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공간의 표정을 결정짓는 안내체계 디자인
작성일:
2023-06-01
작성자:
소식지관리자
조회수:
1570

[기획] 정보 전달을 위한 시각 메시지, 안내체계 디자인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31호(202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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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란 디자인그룹메카 대표가 전하는 

공간의 표정을 결정짓는 안내체계 디자인 


안내 사인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용자에게 목적지를 안내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기본 기능이다. 안내 사인을 체계적으로 갖춘 공간은 동선의 혼선을 방지하고 일관된 이미지를 주어 잘 정돈된 공간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는 더 나아가 건물, 지역, 도시,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경험해보았을 서울지하철 안내체계 디자인을 비롯해 평창동계올림픽, 국립공원, 한강공원, 올림픽공원의 안내체계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서미란 디자인그룹메카 대표가 장소별 안내체계디자인의 특징과 개선안에 대해 전한다. 


안내체계도 멀리 보고 디자인해야 한다

안내체계 디자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웨이 파인딩(way finding)을 이야기한다. 목적지까지 경로를 잘 안내해주는 것을 말한다. 물론 그 기능이 안내체계 디자인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이를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안내체계 디자인은 공간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다. 건축물의 외관과 인테리어 등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반면 안내체계 디자인은 무심하게, 저렴하게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안내체계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동선이나 정보에 혼선을 줄 뿐만 아니라 공간, 어떤 경우에는 지역의 이미지까지 훼손될 수도 있다. 공간의 기본설계부터 안내체계 디자인이 함께 진행된다면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필요한 정보를 보다 더 정확한 위치에 배치할 수 있다. 최적화된 사인물마다 미학적 감성과 디테일한 시공이 바쳐준다면 그 공간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여주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시선을 멀리 두고 디자인할 때 소재 및 구조 개발까지 함께 연구 한다면 공공시설물의 유지·관리뿐만 아니라 예산까지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안내체계 디자인의 배치 계획이나 소재 개발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으레 습관적으로 두었던 곳에 안내 시설물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특성을 파악한 후 동선계획을 잘 세우면 불필요한 가짓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러면 디자인과 소재 개발에 투자해 품질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칼럼을 통해 공간 및 행사의 특성별 안내체계 디자인의 특징에 대해서도 언급하겠지만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간 기획 시 안내체계 디자인의 프로세스에 대한 이야기다.       


공간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 

사람들은 특정 공간에 들어서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와 목적지를 찾기 위해 안내 사인을 찾는다. 사람들이 사인물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공간에서의 안내체계 디자인은 개성 있기보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적확한 곳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하는 지하철을 예로 들어보자. 지하철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대표적인 공공 공간이자 교통시설이다. 현재 지하철 1호선부터 8호선까지 디자인 리모델링 사업의 표준이 되고 있는 것이 지하철 9호선이다. 도시의 인상을 좌우하는 지하철의 표준이 된 9호선의 디자인을 디자인그룹메카가 진행했다. 지하철 9호선은 한강 남쪽을 따라 서울의 동서를 가르는 37개의 정거장이 있는 교통시설물로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함께 처음부터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개념을 공유하며 출발한 프로젝트다. ‘새로운 물결’을 콘셉트로 사람 중심의 공간, 효율적인 공간 유지 관리를 우선시 했다. 원톤, 모듈화, 빌트인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9호선 전 노선의 공간과 사이니지를 구현했다. 모든 역사에 일관성 있게 적용하도록 마감재의 재료, 색상, 규격을 통일했으며 안내 사인, 광고물, 각종 시설물 등의 모듈 크기를 일체화 했다. 기계나 정보판을 빌트인 형식으로 설치해 튀어나오거나 거스르는 것 없이 시야가 탁 트인 공간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하철 역사의 벽은 기존에 사용하던 타일에서 조립식 패널로 마감 소재를 변경하면서 조립과 부착, 해체가 용이하도록 했다. 필요에 따라 벽면에 영상시설물이나 광고물 등을 더하거나 뺄 수 있다. 9호선 지하철 역사 내부는 다른 노선의 역사보다 넓다는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 다른 노선의 지하철 역사에 비해 공간이 좁다. 보기 싫게 튀어나온 안내 사인과 부조화를 이루는 컬러 조합이 없어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것이 없도록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다. 이는 초기부터 ‘새로운 지하철 교통공간’을 만들겠다는 목표 하에 콘셉트를 세우고, 공간의 위계를 정리해나간 디자인 프로세스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성백제 9호선 디자인.

한성백제 9호선 디자인. 사진 제공: 디자인그룹메카


안내체계 디자인이 소리치며 시끄럽게 떠들어야 할 때도 있다. 바로 축제를 위한 디자인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하며, 보면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 한시적으로 보여주는 축제를 위한 안내체계 디자인은 화려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색채와 패턴에 집중한다. 대표적으로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의 영광스러운 국제 행사들이 그렇다. 전 세계인이 보는 행사인 만큼 개최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전략적이고 일관된 매너로 색채와 시각적 장치, 사인 시스템 등에 담아야 한다. 이는 개최도시 룩 디자인과 함께 진행되는데, 공항, 기차역, 고속도로 등의 주요 교통 동선과 개최 도시 곳곳에 방문객에 대한 환영의 메시지와 축제의 분위기를 표현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이하 평창 동계올림픽)를 예로 들어 보자. 여기에는 경기장 룩 디자인, 사이니지 디자인, 개최도시 룩 디자인, 방송용 디자인 등 다양한 안내체계 디자인의 요소가 들어간다. 공항부터 경기장까지 안내되는 사이니지에는 디자인뿐 아니라 관중의 대회 방문 동선을 고려해 방문자 동선 연구, 주요 사인의 정보 인지 최대 거리 등을 연구해 기능적 측면을 면밀하게 분석해 표현했다. 화살표 및 픽토그램의 사용 규정과 언어 표기 규정, 표기 요소 레이아웃 규정 등 다양한 정보 표기 상황들이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이 중요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엠블럼과 그래픽 모티브는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유산인 ‘한글’을 바탕으로 이미 디자인되어 있었다. 디자인그룹메카는 이를 활용해 푸른 설산을 상징하면서도 한글의 아름다움과 조형성을 강조한 게이트 디자인으로 축제의 문을 디자인했다. 또한 포인트 색상을 포함해 총 6개의 색상을 조합하여 어떠한 종목의 경기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평창의 설원에서 펼쳐지는 실외 경기 종목은 빨간색과 주황색 등의 강렬하며 역동감을 주는 난색 계열을 사용하고 푸른 바다가 있는 도시인 강릉의 실내 경기 종목에는 파란색, 청록색, 보라색의 한색 계열을 적용했다. 국제 행사의 안내체계 디자인 계획은 현장의 분위기를 고취시켜야 할 뿐 아니라 TV 등의 영상을 위한 중계 환경에도 적합한 대비로 설정되도록 했다.

   

한글의 아름다움과 조형성, 동계스포츠임을 강조한 디자인

한글의 아름다움과 조형성, 동계스포츠임을 강조한 디자인. 사진 제공: 디자인그룹메카

 

색상을 이용해 경기의 특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색상을 이용해 경기의 특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미지 제공: 디자인그룹메카 

    

방문자의 동선을 연구해 화살표 방향, 거리, 공간 정보 등을 표기한 사이니지 디자인

방문자의 동선을 연구해 화살표 방향, 거리, 공간 정보 등을 표기한 사이니지 디자인. 이미지 제공: 디자인그룹메카 


이렇듯 공간의 특성이나 목적에 따른 시각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심도 있게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 소재라고 생각한다. 2007년 한강공원 내 사인 정비 사업이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3개의 특화 공원과 9개의 일반 공원으로 이뤄져 있던 한강공원의 사인시스템을 CI 개발과 함께 디자인을 통합하는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한강공원의 사인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는 디자인, 장마철 침수피해가 일어나더라도 훼손되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당시 한강에 세운 사인물은 나무 위에 정보를 새긴 정도였는데 한강이 범람하고 나면 대부분의 사인물이 썩게 되어 유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예산도 많이 투입됐다. 그래서 디자인그룹메카는 당시 사인물에 많이 사용되던 인위적 소재인 스테인리스 스틸, 플라스틱, 유리 등에서 벗어나 주변 숲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소재를 고민하다 WPC(목재 플라스틱 복합재)에 주목했다. 건축에서 데크를 깔 때 주로 쓰는 소재인데 나무처럼 보이지만 강도는 플라스틱으로 튼튼하다. 나뭇가루와 플라스틱 재료가 혼합되어 있어 원하는 형태로 자유롭게 성형도 가능하다. 이 소재를 활용하기 위해 나무와 플라스틱의 혼합비율을 연구하여 이질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럽고, 유지관리도 용이한 나무의 형태와 패턴을 닮은 한강 안내 사인물을 만들고 반포와 잠실 한강공원에 시범 설치했다. ‘자연 속의 자연물’이란 콘셉트로 주변환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을 인정받아 2010 iF디자인어워드 골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도자가 바뀌면 기존에 진행되던 많은 사업들도 변경된다. 한강공원 사인물 역시 지금은 겨우 진입로 안내 사인만 남은 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자연 속의 자연물을 콘셉트로 디자인한 한강공원 안내 사인물.

자연 속의 자연물을 콘셉트로 디자인한 한강공원 안내 사인물. 이미지 제공: 디자인그룹메카 


프로세스가 바뀌어야 안내체계 디자인이 발전한다

유럽, 미국 등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사진첩에 꽤 많은 안내사인물이 저장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지하철 방향 안내 사인, 화장실을 알려주는 픽토그램, 층수를 알려주는 슈퍼 그래픽 등. 그것이 단지 이국적으로 느껴져서 였을까? 아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시와 공간과 디자인이 잘 어울렸기 때문에 아름답게 느껴진 것이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그들은 안내체계 디자인 또한 귀한 물건처럼 다듬고 보수하며 오래도록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기억에 남는, 또는 사진첩에 저장되어 있는 안내체계물이 있나? 사진첩에 저장된 디자인이더라도 몇 년 뒤에 다시 찾아가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안내체계 디자인은 설계가 모두 끝난 후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도 안내체계 디자인을 설계 단계의 맨 마지막으로 장식품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 9호선 사례가 이슈였던 이유가 초기 설계부터 안내체계 디자인이 함께했고, 그렇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완성도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디자인이 개선되려면 프로세스가 바뀌어야 한다. 안내체계 디자인이 초기 설계 단계부터 투입될 수 없다면 디자인한 전문가에게 시공 감리를 책임지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공기관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우 경쟁 PT를 통해 디자인업체가 선정되어 진행이 된다 해도 시공업체 선정 시 최저가 입찰로 업체가 선정되는 게 현실이다. 시공업체 선정 시 참여 업체가 목업을 가지고 와 프리젠테이션을 하도록 하고 디자이너가 현장 감리를 할 수 있도록 계약하는 프로세스로 바꾸면 지금보다 한 단계 발전된 안내체계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일관된 이미지로 관리할 수 있도록 안내체계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해도 그 가이드라인은 유한한 것이 아니다. 3, 5년에 한 번씩 디자이너에게 리뉴얼을 의뢰하거나 공간에 변곡점이 찾아왔을 때 리뉴얼을 하는 정도에서 진화를 거듭하는 것이 좋다.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은 예산 낭비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며 관리하는 곳이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전국 24개의 국립공원이다. 1990년대 디자인그룹메카가 디자인한 안내체계 가이드라인을 조금씩 업그레이드하며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매뉴얼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고 성장한 좋은 사례다. 생활에 밀접한 정보를 제공하며 환경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안내체계 디자인의 중요성을 모두가 인식하여 이를 잘 관리하고 유지하여 당초 디자인 의도를 계속 이어나가는 시스템이 정착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국립공원 심볼마크, 캐릭터, 엠블럼 등을 활용한 안내 사인물


국립공원 심볼마크, 캐릭터, 엠블럼 등을 활용한 안내 사인물

국립공원 심볼마크, 캐릭터, 엠블럼 등을 활용한 안내 사인물. 사진제공: 디자인그룹메카



인터뷰이: 서미란 디자인그룹메카 대표, 구술 정리: 박은영 


전문가 칼럼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서미란은 우리나라 디자인산업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투철한 기업관과 창의력으로 중소기업의 지위향상에 이바지한 공로가 큰 모범중소기업인으로 인정받으며 2020년 한국디자인협동조합에서 주최한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표창장을 수여 받았다. 브랜딩, 인테리어, 사인 디자인 등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환경디자인 전문기업 디자인그룹메카를 이끌고 있다. designgroupmec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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