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작성일:
- 2025-08-05
- 작성자:
- 박은영
- 조회수:
- 337
[기획] 도시 공원이 삶에 중요한 이유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57호(202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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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일상과 생태를 잇는 공원의 새로운 역할
공원은 더 이상 단순한 휴식 공간이나 도시의 녹지 비율을 채우는 수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연령과 계층을 막론하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위기 같은 환경 이슈,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함께 커지고 있다.
공공 공간의 성격과 기능에도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다양해진 라이프스타일과 생활 패턴을 반영한 오늘날의 공원은 정신적, 신체적 회복을 도와주며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잇고 자연 환경과 시설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1980년 도시공원법 제정 이후 양적으로 확장된 도시 공원은 최근 녹지 확보 기준이 강화되면서 생활 밀착형, 다기능적 공간으로 질적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일상 가까이에서 자연과 만나면서 여가와 세대 간의 소통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공원을 중심으로 지역 커뮤니티가 재편되거나 도시의 유휴 공간이 공공성과 생태적 가치를 회복하는 장으로 재탄생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중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현대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도시 공원이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과 가능성을 모색한다. 세대 간의 소통을 유도하는 소셜 허브형 공원, 쓰임이 다한 폐시설물을 재생한 공원,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공원 등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통해 향후 변화해 나가야 할 도시 공원의 방향성을 조명해본다.
시민들 간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소셜 허브로서의 도시 공원
도시 공원은 지금 다양한 세대와 배경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관계를 맺는 교류의 장으로 진화 중이다. 일상의 쉼터이자 새로운 만남의 공간으로 공동체 회복과 사회적 연결을 촉진하는 공공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휴식과 교류의 공간을 마련한 중국 포산시의 대나무 파빌리온
중국 광둥성 포산시 베이자오(Beijiao) 중심부의 시민 공원인 ‘시안모 플라워 필드(Xianmo Flower Field)’는 사계절 꽃이 만발하는 경관을 갖추고 있지만 낮 시간대에는 그늘이 부족해 이용률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광둥공업대학교 건축대학과 광저우에 기반을 둔 건축 설계사무소 아틀리에 씨앤에스(Atelier cnS)가 협력해 공원의 일부를 마이크로 리노베이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21년 완공된 이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조달한 대나무로 만든 세 가지 파빌리온으로 구성되었다. 자재의 양을 최소화하면서도 곡면 프레임 구조를 통해 시각적 밀도와 공간감을 확보했다. 각각의 구조물은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동선과 행위를 분석해 기존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됐다. 연못 가장자리에 설치된 원형 구조물 ‘앰브레이스 파빌리온(Embrace Pavilion)’은 반개방형 형태의 원형 구조물로 작은 공연과 모임,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잔디광장에 설치된 ‘플라워 파빌리온(Flower Pavilion)’은 곡선형 지붕 구조물로 비와 햇빛을 차단하면서 각종 임시 프로그램과 행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어린이 놀이터 인근에 위치한 ‘브리즈 파빌리온(Breeze Pavilion)’은 산책 중 잠시 머무르거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로 쓰인다. 이 파빌리온은 도심 속 쉼터가 되어주며 축제와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포용하는 유연한 공공 공간의 모델을 제시한다.
현지에서 조달한 대나무를 곡면 프레임 구조로 엮어 만든 엠브레이스 파빌리온. 그늘이 부족했던 기존 공원에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줬다.
사진 출처: ©Siming Wu / archdaily
곡선 형태의 지붕이 인상적인 엠브레이스 파빌리온 전경. 앞쪽에는 야외 좌석을 마련해 도시 공원 속 열린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된다.
사진 출처 ©Siming Wu / archdaily
꽃잎이 겹겹이 펼쳐진 듯한 구조의 플라워 파빌리온. 대나무를 엮어 만든 이 곡면 지붕은 전통 공예 기술과 디지털 설계 기법을 결합해 만들었다.
사진 출처 ©Siming Wu / archdaily
생애주기 맞춤형 공원 모델을 제시한 서울 오목공원 리노베이션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오목공원이 1989년 조성된 이후 약 34년만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건축 설계는 모스 건축사사무소(Moss Architects), 조경 설계는 디자인 스튜디오 로씨(Design studio loci)가 맡았다. 공원 중심에는 정사각형 회랑 구조물을 마련해 상부는 산책로, 하부는 햇볕과 비를 피하는 그늘 쉼터로 활용된다. 이 회랑은 휴식과 이동, 조망과 교류를 아우르며 공원 전체의 동선과 분위기를 조율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새롭게 정비된 공원은 기능별로 공간을 나누었다. 반려견이 목줄 없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반려견 놀이터, 어르신을 위한 게이트볼장과 운동 시설, 청년층을 위한 스트리트 운동 구역과 피크닉 공간, 아이들을 위한 실내 놀이터와 유아숲 체험장 등을 유기적으로 배치해 각 연령대가 독립적으로 공원을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문화적 활용도 한층 강화되었다. 이동식 벤치와 테이블은 마켓, 소규모 공연, 주민 축제 등 행사에 따라 유동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도록 고려했으며 공원 내 유휴 공공시설은 ‘오목한 미술관’으로 개조해 지역 예술 활동의 거점이 되어 준다. 이번 개편은 고령화, 1인 가구 증가, 반려동물 양육 가구 확대 등 변화하는 도시 라이프스타일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공원의 새로운 역할을 보여주었다.
<2024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대통령상 수상작 오목공원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오목공원. 중앙의 회랑 구조물은 상부의 산책로와 하부의 그늘 쉼터를 결합한 입체적 공간으로 머무름과 이동의 흐름을
동시에 제공한다. 사진 출처: ©유정오 / designloci.com
활력 넘치는 색감이 반영된 스트리트 농구장은 청년층의 운동과 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
사진 출처: ©유정오 / designloci.com
공공 공간에서의 소통을 촉진하는 예페 하인의 벤치 예술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덴마크 출신 예술가 예페 하인(Jeppe Hein)의 대표작 ‘모디파이드 소셜 벤치(Modified Social Benches)’는 단순한 휴식 시설을 넘어선다.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선보여온 이 시리즈는 익숙한 공공 벤치 형태를 예측 불가능하게 비틀어 감각적 상호작용과 사회적 연결을 돕는 공공예술 장치로 작동한다. 기존 벤치 구조는 유지하되 좌석이 위로 솟거나 곡선을 이루도록 디자인을 변형시켜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교차시키고 낯선 이들 간의 대화를 촉진한다. 눕거나 기대는 등 다양한 움직임을 유도하는 이 벤치에서 사람들은 그저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인과 공간에 반응하며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 시설물은 뉴욕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를 비롯해 런던, 뮌헨 등 세계 주요 도시의 거리와 공원에 설치되었으며 각기 다른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의 현대미술관 인디애나폴리스 뮤지엄 오브 아트(Indianapolis Museum of Art, IMA) 부지 내 공공예술 공간인 ‘100 에이커(100 Acres)’ 공원에서는 호수를 따라 이어진 비정형의 벤치들을 통해 일상적인 산책길에 감각적 탐험 요소를 부여했다. 일부 벤치는 땅 속으로 내려가거나 휘어진 형태로 구성되어 걷기, 멈추기, 앉기, 마주보기 등 생활 동작에 리듬과 긴장을 더하며 소통 방식을 새롭게 구성한다.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 바젤 2019’ 기간 동안 쾨닉 갤러리(König Galerie)를 통해 선보인 모디파이드 소셜 벤치 시리즈는 공공 공간에 임시 설치되어
관람객들 간의 자연스러운 시선 교차와 대화를 이끌어냈다. 사진 출처: artbasel.com
미국 뉴욕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Brooklyn Bridge Park)에 설치된 붉은색의 모디파이드 소셜 벤치는 곡선 형태를 통해 도시의 경직된 구조에 유쾌한
긴장감을 더하고 공공 공간에서의 우연한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설치 예술로 작동한다. 사진 출처: ©James Ewing / König Galerie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IMA 미술관의 야외 공원에 설치된 예페 하인의 작품. 전형적인 공원 벤치의 형태를 변형해 앉는 행위를 새로운 신체적 경험으로 바꾸며
방문객 간의 대화를 유도하는 사회적 조형물로 기능한다. 사진 출처: jeppehein.net
기후 회복력을 높이고 자연과 도시 생태계를 연결하는 공원
기후·환경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원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도심 열섬 현상 완화, 빗물 저류, 생물 다양성 회복 등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 생태계를 구축하는 공공 인프라로 활용된다.
재난 대응 시설과 일상적 공간이 결합된 미국 뉴저지 레질리언시티 파크
미국 뉴저지주 호보켄(Hoboken)에 조성된 레질리언시티 파크(ResilienCity Park)는 평소에는 지역 주민들의 휴식과 놀이를 위한 공원으로 사용되다가 폭우가 내리면 최대 200만 갤런(약 7570톤)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도심형 저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이곳은 일상적 커뮤니티 공간과 기후 재난 대응 인프라가 하나의 장소에 결합된 하이브리드형 공공 공간으로 도시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된 선도적 사례다. 과거 화학 공장 부지였던 약 2만 2000㎡ 규모의 토지를 정화한 뒤 재구성한 이 공원은 2012년 허리케인 샌디로 인한 대규모 침수 피해를 계기로 다시 조성되었다. 2023년 완공된 레질리언시티 파크는 지하에는 대형 빗물 저장 탱크와 펌프 시설, 지상에는 투수 포장과 빗물 정원, 놀이 공간과 커뮤니티 운동 시설이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평소에는 지역 주민들의 여가 장소로 활용되며 집중 호우 시에는 지하 탱크와 지상 저류 구역이 유입된 빗물을 임시 저장하고 펌프 시스템이 이를 허드슨강으로 천천히 방류해 침수와 하수 역류를 방지한다.
미국 뉴저지 호보켄에 조성된 레질리언시티 파크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풍경. 놀이터, 커뮤니티 센터, 운동장, 저류 정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이브리드 공공 공간이다. 사진 출처: theolinstudio.com
어린이의 창의적 신체 활동을 유도하는 놀이터 플레이밸리(Play Valley)에는 자연 지형을 활용해 다양한 난이도의 놀이 요소를 배치해 놓았다.
사진 출처: theolinstudio.com
놀이터에는 자연 소재를 활용한 구조물을 배치해 아이들의 창의력과 신체 활동을 자극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지역 사회를 위한 안전한 여가 공간이 되어준다.
사진 출처: hobokennj.gov
허리케인 샌디로 인한 침수 피해 이후 레질리언시티 파크는 도시의 기후 회복력을 높이고자 조성된 인프라이자 시민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사진 출처: theolinstudio.com
도심 속 생태 인프라가 된 방콕의 벤자키티 포레스트 파크
태국 방콕 중심부에 약 65헥타르 규모로 조성된 벤자키티 포레스트 파크(Benjakitti Forest Park)는 한때 국영 담배 공장의 일부로 20세기 중후반까지 공업 지대로 활용되었으나 2022년 생태·사회적 기능을 갖춘 대규모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도시 열섬, 침수, 생물 다양성 감소 등 방콕이 직면한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조성된 이 공원은 기존의 인공 구조를 걷어내고 자연 지형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콘크리트 구조물 대신 토양, 식물, 물의 순환 작용을 기반으로 한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이 설계에 적용된 것이 핵심이다.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고 강우를 흡수할 수 있도록 계단식 습지를 만들었으며 식물과 미생물을 통한 정수 기능도 반영했다. 이로 인해 집중 호우 시 도시 하수 시스템에 가해지는 부담을 완화하고 평상시에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 관찰과 교육 공간으로 활용된다. 공원의 동선 역시 생태 구조와 맞물려 유기적으로 디자인되었다. 높낮이를 달리한 보행 데크는 습지를 가로지르며 물의 흐름과 녹지 구조를 자연스레 따라가고 조망대, 야외 무대, 관찰로, 생태 전시관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과 연결된다. 특히 토종 식물 위주로 식생을 구성해 생물 다양성 회복에 기여하고 있으며 오염됐던 공장 부지를 자연 친화적으로 되살렸다는 점에서 환경 복원의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다.
방콕의 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한 벤자키티 포레스트 파크의 전경.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 한 가운데에 자연의 숨결을 불어 넣는 공간이 되어준다.
사진 출처: ©Srirath Somsawat / archdaily
습지를 따라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보행로. 공원을 찾은 방문객들은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토종 식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사진 출처: ©Srirath Somsawat / archdaily
지상 데크와 고가 산책로로 이중 구성된 벤자키티 포레스트 파크의 보행로는 누구나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유니버셜 디자인을 적용해 다양한 높이에서 수변 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다. 사진 출처: ©Srirath Somsawat / archdaily
도심 속 휴식처가 된 유휴 공간 재생 공원
물리적 기능을 다한 폐산업시설과 도심 속 자투리 공간이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면서도 현재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설계된 공원은 도시의 유휴 자산을 공공 자원으로 전환하는 창의적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도심 속 유휴 기반 시설을 정원으로 재구성한 시드니의 재생 프로젝트
호주 시드니 동부의 패딩턴(Paddington) 지역은 19세기 중후반 산업화 시기의 흔적을 간직한 주거지이자 활발한 상업, 문화 활동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이곳의 중심 도로인 옥스퍼드 스트리트 인근에는 한때 시드니 도심에 물을 공급하던 저장고가 있었다. 1866년부터 가동되었던 이 물탱크는 1899년 퇴역한 후 장기간 폐쇄된 채 방치되었다. 이후 시드니 시는 유휴 기반 시설의 활용 가능성을 탐색하며 해당 공간을 공원으로 전환했다. 패딩턴 리저버 가든(Paddington Reservoir Gardens)은 시드니의 건축 설계사무소 톤킨 줄라이카 그리어(Tonkin Zulaikha Greer)와 조경 설계사 JMD 디자인(JMD Design)이 협력해 완성되었다. 19세기 물탱크를 반지하형 정원 공원으로 변신시켰는데, 붉은 벽돌로 쌓은 아치형 구조, 주철 기둥, 철재 트러스 일부를 그대로 노출해 시각적 중심을 잡고, 그 위에 유리와 목재를 조합한 보행 데크를 설치했다. 정원 중앙부는 옛 저장조의 바닥을 따라 만들어진 반지하형 오픈 스페이스로,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식재가 주변 구조물의 질감을 한층 도드라지게 한다.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는 이 정원은 역사적 구조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현대 도시의 쓰임에 맞게 재해석된 사례다.
과거 지하 저수조였던 공간을 활용한 패딩턴 리저버 가든. 붕괴된 구조 일부를 남겨두고 산업 유산과 자연이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 정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 출처: ©Brett Boardman / archello
옛날 건축의 흔적 위에 자연을 덧입힌 공간. 아치 아래로 햇빛이 스며들고 연못과 식생이 어우러져 도심 한복판에서 고요한 쉼터가 되어준다.
사진 출처: ©Brett Boardman / archello
기존 벽돌 아치와 철제 기둥 구조는 그대로 살리고 현대적인 계단과 데크를 최소한으로 설치해 옛 것과 새 것이 절묘하게 공존하도록 구현했다.
사진 출처: ©Brett Boardman / archello
석유 저장시설에서 시민의 문화 마당으로 전환한 서울 문화비축기지
1976년 석유 파동을 계기로 조성되며 한때 1급 보안시설로 운영되던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의 석유비축기지는 약 6900만 리터의 유류를 저장하던 전략 시설이었지만 2002년 월드컵을 앞둔 2000년에 안전 문제로 폐쇄된 후 10여년 간 방치되었다. 서울시는 시민 공모를 통해 이 공간의 전환을 기획했고 2017년 ‘문화비축기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기존 여섯 개의 폐유탱크는 해체 없이 원형 구조를 최대한 유지한 채 각각의 장소적 특성과 규모에 맞춰 조성되었다. 천장과 벽을 유리로 감싼 전시 공간 전시탱크(T1), 상부 야외 무대와 하부 실내 공연장으로 이뤄진 공연탱크(T2), 원형 구조를 그대로 보존한 공간인 원형탱크(T3), 워크숍과 회의가 이루어지는 다목적 공간 문화탱크(T4), 석유비축기지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관 이야기탱크(T5), 카페와 강의실 등으로 사용되는 커뮤니티센터(T6)로 재구성되었다. 내부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단열, 조명, 음향 기능을 보완하되 외관은 철판의 질감과 구조를 그대로 노출해 산업 유산의 잔재를 보존했다. 탱크 외부 구역은 축구장 22개 규모의 문화마당(T0)으로 탈바꿈되어 축제와 시장, 퍼포먼스 등의 대형 행사를 수용한다. 전체 공간은 기존 구조물과 식생을 최대한 보존하며 재설계되었고 철판과 콘크리트 등 기존 자재의 재활용, 자연 채광을 고려한 구조 설계를 통해 생태적인 공공 공간으로 거듭났다. 과거 산업화의 흔적을 품은 이 장소는 오늘날 도시가 요구하는 시민들의 문화 플랫폼으로 사용되며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의 상징으로 언급되고 있다.
기존 탱크의 강판을 재활용해 외장을 마감한 커뮤니티 센터(T6)는 문화비축기지 내에서 유일하게 새로 지은 건물이다. 내부에는 컨퍼런스 홀, 카페, 문화자료실, 사무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출처: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커뮤니티 센터(T6) 내에 조성된 도서관. 탱크 구조의 곡면을 그대로 살린 벽면과 목재 가구가 어우러져 아늑하고 독특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사진 출처: theseoulguide.com
전시와 공연, 워크숍 등을 위한 전시탱크(T1). 가솔린 저장용 탱크였던 기존 구조물을 해체하고 유리 벽과 지붕을 갖춘 열린 공간으로 바꾸었다.
사진 출처: theseoulguide.com
다목적 문화 공간인 문화탱크(T4)의 내부는 기존 저장 탱크의 강철 벽과 파이프를 그대로 보존해 산업 구조물의 원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진 출처: theseoulguide.com
한때 등유를 저장하던 이야기탱크(T5)는 현재 미디어 홀과 전시 공간, 자료관 등으로 재구성되어 과거 산업 시설의 기억을 다양한 콘텐츠로 전달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사진 출처: theseoulguide.com
글: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