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작성일:
- 2025-09-02
- 작성자:
- 박은영
- 조회수:
- 254
[기획] 디자인으로 위기를 극복한 전통시장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58호(202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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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건축으로 재탄생한 해방촌 신흥시장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와 온라인 유통망의 확산 속에 점차 입지가 좁아졌다. 기반 시설의 노후화로 위생, 안전, 편의성에서도 한계를 드러내며 공동체의 생활 거점으로서 기능이 약화되었다. 1970~80년대 형성된 해방촌 신흥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니트 공업과 피난민 출신 상인들의 생업이 축적된 이곳은 오랜 세월이 흐르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가 건축적 개입을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 변화의 핵심에는 단순 시설 보수를 넘어 시장의 풍경 자체를 완전히 바꾼 ‘클라우드(Cloud)’ 프로젝트가 있다. 투명 지붕을 얹은 건축 구조물이 낡은 골목 시장에 빛과 개방감을 불어넣었고 젊은 세대와 외국인의 발걸음을 이끄는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래된 시장이 품고 있던 고유한 개성이 살아나면서 해방촌 신흥시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이 성과는 공공 건축이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보완하고 도시 공동체의 회복력을 높일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평가는 2024년 서울시건축상 대상, 국무총리상 문화공간대상,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해방촌 신흥시장 사례는 기반 시설의 개선, 보행 및 상업 동선의 재조정, 야간 경관과 안전성 확보 등의 과제를 건축적으로 통합했을 때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클라우드를 설계한 UIA 건축사사무소의 위진복 소장과 큐앤파트너스의 홍석규 소장에게 전통시장이 지닌 가능성과 공공 건축의 향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쇠락한 시장의 재활성화, 아케이드에서 해법을 찾다
서울시 용산구 고지대에 위치한 해방촌 신흥시장은 한때 번성했으나 장기간의 노후화와 인프라 부족으로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 슬레이트 지붕이 빛과 공기를 차단해 내부는 어둡고 답답했으며 폐허같은 상태였다. 조명이 부족한 좁은 통로는 상인과 손님 모두에게 불편을 주었다. 전환점은 서울시가 마련한 설계 공모였다. 2017년 건축가 위진복과 홍석규의 클라우드 프로젝트가 선정되면서 개선의 가능성이 열렸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건물의 모습은 살리면서 공간의 기능과 개방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두었으며 특히 공기 순환과 채광을 핵심 목표로 삼았다. 이탈리아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Giuseppe Mengoni)의 걸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품 쇼핑 센터 ‘비토리오 에마노엘레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를 떠올리며 천장의 아케이드를 통해 시장 골목에 화사한 빛이 스며드는 풍경을 청사진으로 삼았다.
노후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인해 채광과 환기가 차단되면서 골목 구석구석마다 어둡고 폐쇄적이었던 환경 개선 전 신흥시장 모습. 사진 출처: UIA건축사사무소
클라우드 프로젝트 설계 당시 청사진으로 삼았던 이탈리아 밀라노의 대표적 아케이드 건축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내부 전경. 유리와 철 구조의 돔 지붕을 통해 화사한 햇살이 들어온다. 사진 출처: italia.it
투명하고 가벼운 신소재로 시장 안에 빛을 들이다
클라우드 프로젝트의 가장 상징적 요소는 시장 위로 떠 있는 구름 모양의 투명 지붕이다. 고강도의 플라스틱 비닐 소재인 ETFE 필름으로 제작된 이 구조는 두 겹을 겹쳐 내부에 공기를 주입해 풍선처럼 팽창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되며, 가볍고 투과성이 높아 자연 채광과 환기를 동시에 확보한다. 기존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한 뒤 7개의 얇은 철제 기둥 위에 지붕을 얹어 공중에 띄우는 방식으로 설계해 시장 내부의 폐쇄감을 해소하고 시각적 개방성을 극대화했다. 전체 덮개 면적 678㎡를 불과 1㎡에 해당하는 기둥 면적으로 지탱하는 구조적 효율은 마치 샤프심 하나가 명함을 떠받치는 것에 비유될 만큼 정교하다. 기둥은 다발 형태로 모아 동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위로 퍼지듯 뻗어 지붕을 지탱한다.
위진복 소장은 그간 쌓아온 공공건축 경험을 바탕으로, 공모 당시부터 좁은 골목에 적합한 재료로 ETFE 소재를 떠올렸다. 영국에서 ETFE 전문 회사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던 홍석규 소장과 함께 이 소재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설계를 풀어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수영 경기장에서 적용된 바 있으며 화재 시에는 완전 연소되어 유해가스 발생이 적다. 곡면 구조로 빗물과 함께 미세먼지, 꽃가루가 씻겨 내려가 별도의 세척이 필요 없는 것도 장점이다. ETFE는 최대 폭 4m 단위로 생산된 필름을 이어 붙여 무한 확장이 가능하며 유리처럼 별도의 지지 구조 없이도 대규모 지붕을 형성할 수 있다.
공사 현장에서 ETFE 필름 지붕을 설치하는 과정. 가볍고 유연한 ETFE 필름이 철골 프레임 위에 씌워지며 구름 형상의 상징적 구조물로 완성됐다.
사진 출처: UIA건축사사무소
클라우드의 공동 설계자인 홍석규 소장은 좁은 골목에서도 얇은 철골 기둥을 자유롭게 세울 수 있었던 것이 ETFE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네 갈래로 나뉜 기둥이 하나로 모였다가 다시 위로 퍼지며 지붕을 받치는 구조는 구름 풍선을 떠받드는 듯한 형상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중력에 맞서는 방식으로 설계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공기막 내부의 압력이 위로 밀어내는 힘인 ‘인양력’을 다루며 독창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했다. 기존 건물에 기둥을 부착하지 않고 독립 구조로 설계하며 얻은 이 결과물은 한국 시장 아케이드 구조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둥그런 모양이 구름을 연상케하는 구조물. 시장이 자리한 장소 뒤편으로는 서울의 상징인 남산이 보인다. 밤에는 은은한 조명으로 골목을 밝히고 남산의 야간 조명 색을 반사시킨다. 사진 출처: ©신재익, UIA건축사사무소
구름처럼 솟아오른 곡선 지붕은 좁은 골목을 따라 흐르며 시장 풍경과 맞닿는다. 흰색 철골 구조와 투명 막이 만들어낸 독툭한 실루엣은 마치 공중에 설치된 롤러코스터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출처: ©신재익, UIA건축사사무소
지역 상인과의 숱한 의견 조율 끝에 완성된 구조물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상인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였다. 기존 지붕 철거에 대한 우려와 기둥 위치 조정, 소방차 진입 여부까지 실제 시장 운영에 필요한 문제를 건축적으로 풀어내며 기능성과 합의를 동시에 확보했다. 단순히 노후된 시설을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구조를 최대한 살리고 필요한 부분만 개입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방촌은 서울에서 보기 드문 맞벽 건축 지역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에 틈이 없기 때문에 기둥을 세울 때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배치해야 했다. 처음 공모안에서는 12개의 기둥을 계획했지만 건물에 기둥을 부착할 수 없다는 제약때문에 네 갈래로 나누어 총 48개의 기둥을 세우는 방식으로 수정했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주민 설명회에서 낯선 건축 소재와 구조 방식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많은 노력이 들었다. 특히 연령대가 높은 상인과 주민들에게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수차례 겪었다. 기둥의 위치가 조금씩 옮겨질 때마다 설계와 구조를 다시 수정해야했고 이런 조율은 1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기존 건물들 사이에 기둥과 철골 구조물이 교묘하게 자리잡았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흥시장만의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기둥을 세우기 위해 신흥시장 골목 바닥을 파내고 배수관을 교체, 정비하는 토목 공사 과정. 시장 환경 개선을 위한 기초 인프라 정비가 함께 이루어졌다.
사진 출처: UIA건축사사무소
완공 이후 시장은 새로운 활기를 얻었다. 지붕이 위쪽으로 높게 설치되며 그동안 쓰이지 않았던 건물의 상층부까지 활성화되었다. 사무실과 복합시설로 임대되거나 옥상에는 루프톱 카페가 들어섰다. 밤에는 지붕이 조명으로 밝혀지고 남산타워의 불빛과 어우러지며 다채로운 색감으로 물든다. 기둥은 흰색으로 마감해 오래된 주변 건물들이 시각적으로 눈에 띄게 했으며, 2층에서 창 밖을 내다보아도 단정한 기둥의 선만 드러나도록 설계해 시장과 마을 풍경의 개성을 강조했다.
하늘을 향해 퍼져나가는 흰색 철골 기둥은 나무 줄기처럼 골목을 지나며 지붕을 떠받친다. 건물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구조 덕분에 시장은 리듬감을 얻었고 오래된 벽돌 건물과 새로운 구조물이 뒤섞이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사진 출처: ©신재익, UIA건축사사무소
주변 풍경을 돋보이게 하는 흰색 기둥과 구조물. 1층 가게에서 이웃 건물을 바라보거나 2층 카페에서 창 밖을 내다보더라도 오래된 건물의 질감과 색이 도드라져 보인다. 사진 출처: ©신재익, UIA건축사사무소
공공건축, 전통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이끌다
환경 개선 이후 해방촌 신흥시장의 원주민들은 건물을 임대하거나 매각하며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고, 현재는 소규모 창업을 꿈꾸는 젊은 운영자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매출도 놀라울 만큼 상승했다. 그러나 상업적 성장보다 더 중요하게 바라보는 지점은 지속 가능한 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신흥시장의 점포 면적은 5~10평 남짓한 소규모로 진입과 이탈이 비교적 용이하고 새로운 운영자가 들어오고 자본을 축적한 뒤 외부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정 집단이 장기간 고정되는 대신 구성원이 유연하게 교체되는 흐름은 시장의 활력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로 작동한다. 해방촌 신흥시장에는 스타트업 사무 공간, 개인 작업실, 루프톱 카페, 에어비앤비 숙소 등 기존 전통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자유롭고 진취적인 젊은 세대들과 서울의 활기찬 문화를 접하려는 외국인들이 유입되면서 문화 다양성 측면이 두드러진 양상을 보인다. 노후된 공간을 개선할 때 단순히 물리적 재사용이나 친환경 자재 활용을 넘어 사회·문화적 차원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코카콜라가 해방촌 신흥시장과 협업하기도 했다. 코카콜라의 글로벌 미식 캠페인 ‘코크&밀(Coke&Meal)’의 일환으로 신흥시장 내 다이닝 레스토랑 일부가 참여해 코카콜라의 로고와 브랜딩을 더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 점은 젊은 세대의 관심을 충분히 끌어들일 만한 요소이겠지만, 단일 브랜드 이미지가 덧씌워지며 장소의 정체성이 자칫 흐려지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민간 기업의 지원이 유입될 경우 기업이 의도한 서사가 과하게 개입하거나 과도한 상업화로 기울면서 기존에 지켜오던 흐름이 단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은 자생적으로 운영될 때 다양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쌓이고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색다른 도시 경험을 제공해 줄 전통시장
클라우드 프로젝트는 전통시장의 흔한 아케이드 구조를 단순히 교체하는 대신 지붕을 높이 들어올려 새로운 공간 유형을 제시한 사례다. 기존 건물은 그대로 두고 위쪽으로 지붕을 얹는 방식으로 시장의 풍경 전체를 바꾸었으며, 이는 전통시장이 간직한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전혀 다른 건축적 경험을 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마르크트할이 아파트와 시장을 결합한 복합 건축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다면 해방촌 신흥시장의 클라우드 프로젝트는 전통시장의 형태 위에 공공건축이 개입해 공간 경험을 확장시킨 경우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마르크트할. 거대한 아치형 구조에 시장과 아파트가 공존하는 혁신적 건물로 장터와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이어낸 사례다.
사진 출처: ©Nico Saieh, archdaily
이러한 시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역할뿐 아니라 공공 건축과 공공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의 선구안과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방촌 신흥시장 역시 처음에는 용산구에서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플라스틱으로 교체하려고 했으나 서울시가 참신한 접근을 제안하면서 클라우드 프로젝트와 같은 사례로 이어질 수 있었다. 프로젝트는 2017년 당선 이후 이듬해 완공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수년의 조율 끝에 2022년에야 마무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조정이 이루어졌고 관련 담당자가 여덟 번이나 바뀌기도 했지만 기획자와 건축가와의 합, 장소의 특수성과 시기의 적절함이 모두 맞물리며 마침내 완공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공공기관과 전문가, 시민이 협력하며 가능성을 모색한 귀한 성취라 할 수 있다. 단발적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도시와 사회가 진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인터뷰이: 위진복 UIA 건축사사무소 소장, 홍석규 큐앤파트너스 소장
위진복은 영국 왕립 건축사로 런던 AA 스쿨에서 수학한 뒤 마이클 홉킨스 아키텍츠(Michael Hopkins Architects)와 리처드 로저스 파트너십(Richard Rogers Partnership)에서 일했다. 2009년 UIA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해 공공 건축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홍석규는 영국 왕립 건축사이자 대한민국 건축사이다. 런던 AA 스쿨에서 학업을 마치고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영국 소재 건축 회사에서 실무를 수행했다. 2012년 서울에서 큐앤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글: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