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 빈집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작성일:
2024-08-05
작성자:
문한아
조회수:
1198

[기획] 지역을 살리는 빈집 재생

공공디자인 소식지 제45호(202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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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충주시 성내동~성서동 일대의 ‘관아골’은 충주시의 첫 도시재생사업 대상지다. 조선시대에는 관아가 있던 마을이었고, 1970~80년대에는 법원, 검찰청, 은행 등이 모여 있어 늘 사람들로 붐비던 ‘시내’였다. 그러나 관공서가 다른 곳으로 이전한 이후로 빈집이 늘고 슬럼화 되면서 관아골은 주민들도 가기를 꺼리는 ‘담배골목’으로 전락했다.

 

관아골은 70~80m 남짓한 구간에 구옥들이 즐비한 좁은 골목이다. 그런데 이렇게 방치되어 있던 관아골의 빈집에 2017년부터 청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카페, 공방, 책방, 작업실이 하나둘씩 문을 열더니 골목은 어느새 활기를 되찾고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되찾은 활기는 옆 골목, 옆 동네까지 퍼져 공방 골목, 여인숙 골목 등 지역에 더욱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충주 관아골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활성화 된 빈집 재생의 우수 사례다. 이들은 관아골을 ”’핫플 Hot-place’이 아닌 ‘웜플 Warm-place’을 지향하는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관광지로 유명해지기에 앞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행복한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에서다. 소식지 인터뷰에 응해준 박진영 대표 역시 마을 활동가의 역할은 본업을 잘 영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캐릭터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 마을이 각자의 본업을 잘 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하는데, 활동가가 주가 되어 지원 사업에 의존하게 되면 단기적으로 사업을 따기 위한 일에 매몰되어 사업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야 하는 본업과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아골에 모인 청년들은 방치되어 있던 관아골의 빈집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았던 것일까?

 

충주 관아골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로컬 브랜드ㅣ출처: (주)관아골

 

관아골 프로젝트의 시작

충주시 도시재생이 시작된 2017년, 당시 관아골은 원래 있던 주요 관공서들이 이전하면서 급속도로 쇠퇴해 충주시 내에서도 특히 낙후된 동네였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충주에 자리 잡은 박진영 대표는 도시재생에 뜻이 같았던 친구들과 함께 이때를 창업의 기회로 삼았다. 공간 임대료와 건물 매입 가격이 높지 않았고, 충주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었던 이들에겐 일대에 강력하게 연상되는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블루오션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청년 창업 공간으로서 빈집은 무엇보다 비용적인 면에서 크게 유리합니다. 빈집 자체에 특별한 특징이 있는 것도 좋겠지만, 살기에 편하고 마을과 어울리게 빈집을 고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저희에겐 더 의미가 컸어요.” 박진영 대표는 구옥을 전문적으로 리모델링하는 팀과 같이 골목의 낡은 공간을 고치기 시작했고,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희망을 가졌다. 관아골 골목에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이 더 모인 뒤로는 ‘담장마켓’을 열었다. 마켓을 통해 직접적인 수익을 얻지는 못했지만, 골목이 입소문이 나고 평소에도 상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선순환으로 성과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관아골 담장마켓ㅣ출처: 담장마켓 @damjang.market

 

사람들을 불러모은 ‘커뮤니티’

‘관아골 프로젝트’의 큰 특징은 타지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주도하여 활성화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과의 갈등이 없었던 점 또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충주로 거처를 옮긴 박진영 대표가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의 사무국장을 맡아 지역 상인들과 꾸준히 교류한 덕분이다. 마을의 주요 행사에도 늘 골목의 노포들이 함께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응원을 받는다. 높은 공실율에도 쉽게 공간을 내어주지 않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던 건물주들도 점차 활기차게 바뀌어 가는 마을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열었다.

 

지금도 관아골의 청년 커뮤니티는 관아골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지역 정보를 공유하고, 임대나 매매 과정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도움을 준다. 관아골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커뮤니티에 속해 있던 청년들이 독립을 해서 지역 내에 창업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여러 분야의 커뮤니티가 관아골을 중심으로 각자, 또 필요에 따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현재 주요하게 활동 중인 청년의 수만 40여 명에 이른다.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져 확장되는 관아골 청년 크리에이터들의 명함 뒷면ㅣ출처: 보탬플러스협동조합

 

공공이 밀고 민간이 당긴다

도시재생은 대부분 공공사업에서 출발한다. 관아골의 경우도 지금과 같은 체계를 갖추기까지 여러 정부 부처의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에 참여하며 단계적으로 성장해 왔다. 박진영 대표는 공공과 민간의 ‘관계성’이 빈집 재생의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빈집이 멀끔하게 고쳐야 할 사업 대상으로만 취급되면, 민간의 활동가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유휴공간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예산을 들여 만든 공간이 활성화되지 못하면 또 하나의 관리 대상이 된다는 것도 빈집재생 사업에서 지자체가 부담을 가지는 부분이죠. 공공은 행정적인 지원을 확실하게 맡고, 빈집 재생과 운영은 실제 그 공간에서 삶을 살아갈 사람들이 주도해야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와 실행자인 민간의 중간 역할을 하는 지자체 또는 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관아골은 정부 지원 사업이 종료된 후에도 지역 내 전문 기관인 충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연계 사업을 함께 모색했다. 사업 수행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여러 부서가 협력해 빠른 행정 처리가 가능한 지자체의 시스템 또한 관아골 프로젝트의 유의미한 성공 요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야기’

관아골 사람들은 같은 공간을 살았던 옛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 새롭게 공간을 채운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맺어질 관계에 관심이 많다. 타지에서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에는 역사적 관점에서 관아골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 더 이상 읍성이라는 울타리는 없지만, 새로운 지역 공동체가 만들어 가고 있는 이야기를 동시대의 로컬 브랜드로 확장하기 위해서다.

 

관아골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삶을 존중하며, 수평적 협업을 통해 더 나은 터전을 만들고자 한 결과다. 관아골을 찾는 사람들은 잘 고쳐진 공간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공간이나 스타 플레이어, 수십 억의 매출은 없지만, 스스로 정한 삶의 속도에 따라 행복하게 살기위해 빈집을 택한 새로운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빈집 재생 사례를 만들고 있다.


 

인터뷰이 : 박진영((주)보탬플러스 대표, 충주시 관광두레 PD, 골목여행사 로컬로 대표 역임)

8년째 충주시 관아골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도시재생 활동가다. ‘우리만의 살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역 청년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취재· : 공공디자인 소식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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